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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군대 보내놓고 잠잘 수 있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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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 고 김인창 상병이 지난해 12월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 ‘멋진 우리 소대원들, 태풍!’이라는 설명이 달린 사진은 사고가 난 철책부대의 내무반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로 사망한 장병들이 포함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용기있는 멋진 남자가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고(故) 이태련 상병은 자신의 인터넷 미니 홈피에 남긴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19일 유명을 달리했다.

숨진 장병들은 홈피에 올린 사진과 게시물 등을 통해 최전방 철책부대의 고된 생활 속에서도 대한민국 군인으로서의 각오를 다졌다.

고 박의원 상병은 자신의 군번줄 사진으로 메인 화면을 장식했다. 자신의 군복을 입은 누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군인의 자부심을 드러내면서도 홈피의 제목을 전역 날짜인 '2006.05.10'으로 정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고 이건욱 상병은 "앞으로 (전역까지) 1년이 남았지만 (지난) 1년 동안 너무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사회에선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잘 모를 거야"라며 군대의 경험에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또 부대의 주소와 함께 "전화.면회 안 되니까 편지 많이 해줘요"라고 글을 남겨 철책 근무의 외로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들의 홈피에는 19일 하루 수만 명의 네티즌이 방문해 추모의 글을 남겼다. 희생 장병의 친구들 역시 글을 남겨 "제대해서 씩씩해진 모습을 기대했는데, 가슴이 아프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 잘못된 병영문화 지적=국방부 게시판을 비롯한 인터넷에는 부모들의 불안감과 원성이 쇄도했다.

'부심'이라는 ID의 네티즌은 "자식을 가진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다음에는 이런 불상사로 잠 못 이루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또 '오열하는 부모'라는 ID의 네티즌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잘하겠다고 말만 앞세울 뿐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네요.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언제쯤 맘 편하게 잠잘 수 있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과 대책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군대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았다.

'Otaku'라는 ID의 네티즌은 "자유분방한 요즘 아이들을 60년대 사고방식의 군대에 끼워 맞추려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라며 "달라진 세태에 맞춰 군대가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벌써 인분 사건을 잊었느냐"며 군을 질책했다.

한편에서는 "대부분의 장병은 어려움을 이기고 무사히 제대한다"며 해이해진 군 기강을 비판하기도 했다. 국방부 게시판에서 최주호씨는 "군대는 기강이 바로 서야 움직이는 사회"라며 "이런 조직에서 선임병과 후임병을 평등하게 대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사고를 저지른 김모 일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컸다. 유지민씨는 "고참이 무서워도 제대 뒤엔 친구가 되지 않느냐. 김 일병이 너무 나약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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