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방북 결과 미국과 정보 공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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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양 면담에 대해 미국 행정부와 대북 전문가들의 반응이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한국 정부가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양국의 이런 인식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라도 미국에 면담 내용을 조속하고도 성실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미 국무부는 "면담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봐야 한다"면서도 "6자회담이 열려야 열리는 것이며, 그냥 복귀해선 안 되고 핵 프로그램 해체 논의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 위원장이 "7월 중에라도 6자회담에 나갈 수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날짜를 못 박지 않았고, 그나마 "미국이 우리를 인정.존중하려는 뜻이 확고하다면…"이란 전제조건까지 단 데 대해 미국은 별로 탐탁지 않은 듯하다. 한.미 간에 체감온도가 다르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잡음이 날 수밖에 없다. 공개하지 못한 깊숙한 얘기나 김 위원장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까지 미국과 정보를 공유해야 한.미 간에 원활한 공조를 기대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이번 면담에서 한국을 통해 국제사회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있음을 보여 주려 한 것 같다. 동시에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점도 호소하려 했다. 면담을 국제사회의 핵 포기 압력에서 벗어나는 지렛대로 활용하면서 한.미 관계의 균열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벌써 국내에서는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며 미국의 즉각적 호응을 재촉하거나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 위한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는 낙관론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주시하면서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마치 북핵 문제가 다 풀릴 것처럼 나섰다가 북한이 말을 바꾸거나 발을 빼버릴 경우 한국 정부만 우스운 꼴이 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 구축이 우리의 목표다. 이번 면담을 북핵 문제와 남북 관계를 풀어나가는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 자칫 '민족공조'가 우선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한.미 동맹에 문제가 생기면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