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한 장군을 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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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그들은 특히 미8군에서 혁명군의 진압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나더러 「매그루더」사령관을 만나 사태를 원만히 수습토록 하라고 말했어요.
「데커」대장의 후임으로 59년7월 부임한 「매그루더」사령관은 당시 내가 국방장관으로 있었기 때문에 퍽 절친한 사이였읍니다.
4·19혁명으로 내가 장관직을 물러난 이후에도 우리는 가끔 저녁을 같이하고 8군 영내에서 골프도 쳤죠.
사령관실에 전화를 거니 마침 한국군 전속부관인 한상국 중령(현 파나마대사)이 받았어요.
한 중령은 「화이트」대장에서 부터 「데커」·「매그루더」사령관에 이르기까지 역대 8군사령관의 통역을 말고있어 나와는 전부터 잘 아는 처지였읍니다.
내가 대뜸 <「매그루더」사령관이 나를 찾지 않던가>하고 물었더니 한 중령은 <그러챦아도 찾고 있었다>며 빨리 8군으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나는 혁명군의 동태를 알아야하겠기에 박정희 소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마침 박태준 대령 (현 국회재무위원장)이 받았읍니다. 박 대령은 내가 장관때 국방부 총무과장이었기 때문에 전부터 잘알고 있었어요.
내가 「매그루더」사령관을 만나러 가는데 박 소장이 할 말이 뭐 없느냐고 했더니, 마침 박 소장이 외출 중이라며 보고를 해놓겠다고 해 통화를 못한채 8군으로 향했죠.
「매그루더」사령관은 「벨로이」부사령관(후에 8군사령관)과 함께 현관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열펏 보기에도 무척 초조한 것 같았어요.「매그루더」장군은 박 소장과 그의 추총자들의 사상에 대해 얘기하면서 58년에 혁명을 일으켰던 이라크의 「카셀」장군과 흡사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는「카셀」이 군사혁명을 일으켜 소련과 손을 잡아 사회주의혁명으로 이끌었던 것에 비유했어요. 특히 그는 혁명군이 불과 2천7백명밖에 안되니 초기에 진압해야 한다며 다만 유혈사태가 날까봐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읍니다.
그의 설명을 듣고난뒤 내가 <장도영 중장을 만났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뜸 고 했어요.
나는 그때까지만해도 장 총장이 미군과는 퍽 가까운 사이로 알고 있었는데 「매그루더」 사령관의 그 같은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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