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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연금 핑퐁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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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권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천권필
정치국제부문 기자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가 21일 연내 처리를 목표로 공무원연금을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둘러싼 새누리당의 최근 행보를 보면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간의 과정을 더듬어 보자. 폭탄 돌리기 조짐은 지난달 29일의 실무 당·정·청 회의부터 시작됐다. 당시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정부를 향해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만들어 오라고 요구했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만들던 당 경제혁신특별위원회와는 한마디도 조율하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내놓겠다고 공언했던 새누리당이었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개혁안 마련을 정부로 ‘퉁’쳐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당 특위는 해체됐고, 연금 개혁의 주도권은 정부로 넘어갔다.

 사흘 뒤인 지난 2일 새누리당 의원총회. 여당 의원들의 속내가 드러난 자리였다.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자 공무원 출신 의원들이 잇따라 발언을 신청했다고 한다.

 “당이 나서서 공무원연금을 깎으면 절대로 안 된다”고 반발하거나 “적은 월급의 보상으로 연금을 주는데 왜 깎느냐”고 따지는 의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한 의원은 “나도 300여만원의 공무원연금을 받는다”고 고백했다고 당 관계자들이 전했다.

 지난 17일 당정 협의는 어땠나. 새누리당 의원들은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보고한 안전행정부 측에 “공무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당근책을 내놓으라”고 질책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부담스러워하는 건 물론 1년6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연금 개혁에 찬성했다간 지역구 사무실까지 점거당할 수 있다”며 “정치인으로서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아니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미래세대가 떠안게 될 ‘빚 폭탄’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그걸 모르는 여당 의원은 없다. 그렇다면 폭탄 돌리기는 이제 멈춰야 한다.

 물론 당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청와대와 정부도 연금 개혁의 책임을 당에 떠넘겼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동안 청와대와 정부는 올해 안에 공무원연금 개혁을 마무리해 달라고 여당을 재촉하기 바빴다.

 그나마 여야가 이날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각각 구성하기로 한 건 다행이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해 온 야당이 논의 테이블에 앉았다는 점에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16년 총선 일정을 고려하면 사실상 내년 상반기가 마지노선이다. 이제는 정치권과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혁의 주도권을 둘러싼 ‘핑퐁 게임’ 대신 미래세대의 짐을 덜어줄 지혜를 찾아야 할 때다.

천권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