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혼란을 부추기는 정부의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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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과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 겉으로 둘 사이엔 아무 연관이 없다. 한데 일맥상통하는 게 있다. 우리나라 규제정책의 난맥상을 한눈에 보여준다는 점이다.

 먼저 단통법. 이 법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통신요금 인하’ 실현을 위해 마련됐다. “사는 시기와 장소만 달라도 가격이 몇 배씩 차이 나는 스마트폰”에 대한 대통령의 지적에 대뜸 스마트폰 가격을 똑같게 하겠다며 이 법이 설계됐다. 방법은 스마트폰 가격을 좌우하던 보조금 차별을 없애는 것. 덕분에 스마트폰 가격은 같아졌다. 한데 ‘통신요금 인하’라는 본래 의도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갔고, 체감통신요금은 오히려 높아졌다. 왜?

 보조금은 묶였는데 통신요금은 꼼짝하지 않아서다. 국내 이통 요금은 요금인가제 규제를 받는다. 이 법은 3사 과점체제인 이통사들 중 1위인 SKT가 가격 인하로 후발업체를 위협하지 못하게 한다는 목적이 있었다. 그 법이 3사 모두 막대한 영업이익을 남기는 지금까지 살아남아 이통사들이 ‘통신비 경쟁 없는 세상’에 살도록 보호하는 중이다. 이로써 이통사들은 ‘꽃놀이패’를 쥐고, 소비자들만 봉이 됐다.

 라면 가격도 가게마다 다르듯 자본주의 시장에서 장소와 시기에 따라 가격이 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격은 경쟁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지 법으로 정하는 게 아닌데도 정부는 대통령 한 말씀에 냉큼 가격에 손을 댔다. 통신비를 낮추려면 요금 규제를 풀어 경쟁을 하도록 하는 게 나았을 거다. ‘시장가격을 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는 전근대적 발상에서 비롯된 정부의 헛발질로 시장은 혼란스럽다.

 이번엔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 천여 명이 모이는 공연에 안전요원이 없었다. 안전요원 규정이 없었으니 법 위반은 아니다. 깊이가 18m나 되는 환풍구에 위험 표시도 없었다. 건축법엔 환풍구 덮개의 강도나 재질 등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는 규정도 없다. 안전규제는 해방구 수준으로 허술하다. 서울에만 길거리 환풍구가 6000여 개이고, 무시로 그 위를 걸어다니는 터라 그게 그렇게 위험한지 몰랐다. 그런 중에 일어난 대형 참사로 시민들은 패닉이다.

 안전은 이번 정부의 슬로건이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명하며, 간판·봉투·명함 제작 등 소소한 비용으로만 100억여원을 썼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를 필두로 전대미문의 안전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세월호 이후 정부는 안전대책을 기억할 수도 없이 많이 쏟아냈다. 한데 6개월 지나보니 말뿐이었다. 그러면서 어제부터 ‘안전한국훈련’이라는 대형사고 대비 훈련을 떠들썩하게 한다. 이렇게 정부는 간판·훈련 같은 ‘보이는 데’에만 힘을 쓴다.

 ‘위험’은 보이지 않고 몰라서 위험한 거다. 안전은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비해야 실현된다. 이번 사고는 환풍구에 올라간 시민들로 인해 일어났다는 점에서 ‘시민정신’이 도마에 올랐다. 시민정신의 결핍은 우리 사회 숙제이기도 하다. 한데 시민정신도 배워야 생긴다. 거리의 철재 덮개 밑이 18m나 된다는 걸 저절로 아는 사람은 없다. 배에서 사고가 나면 일단 선실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도 배우지 않으면 모른다. 공자님도 “정치란 먼저 백성을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해주고, 그 다음은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 정부는 시민에게 안전을 가르치고 있는가.

 가격·산업에 대한 경제규제는 자칫하면 시장 실패를 부른다.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제규제는 촘촘하고 화끈하게 지르고 본다. 반면 대중의 안전과 환경을 위협하는 위해 요인을 제거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적 규제는 촘촘해야 한다. 안전을 위해 대중을 통제하고 시민 안전교육을 집요하게 해야 한다. 한데 우리나라 규제정책은 생색나고 보이는 데만 집중한다.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두 사안에서 우리는 헛발질 규제를 일삼는 정부의 민낯을 본다. 나라가 편하려면 정부가 기초실력부터 키워야 할 것 같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