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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대는 도쿄 부동산] 1조원대 빌딩 거래 연이어 성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도쿄 디즈니랜드 내 마이하마 리조트.

‘이런 물건이 나왔는데 입찰하시겠습니까?’ 모리트러스트의 요시다 타케시 부사장은 모리 아키라 사장에게 조용히 말을 꺼냈다. 그가 말한 물건은 오피스빌딩과 호텔로 구성된 초 대형 복합시설 ‘메구로 가조엔’이다. 소유자인 미국의 투자 펀드 론스타가 3만 7000㎡의 토지와 오피스동 등 5개 건물(연면적 약 15만㎡)을 매각하기로 해서다. 나카메구로에 살았던 적이 있는 모리 사장에게 가조엔은 익숙한 건물이다. 부지 내에 녹음이 무성할 뿐 아니라, 오피스동에 걸친 서쪽 일대가 탁 트여있어, 맑은 날에는 후지산도 조망할 수 있다. 고급 일본식 연회장을 갖추고 있어 외국인들에게도 인기다. 실제로 아마존재팬이나 월트디즈니재팬, 포르쉐재팬 등 거대 외국계 회사가 다수 입주해있다.

‘대형 건물은 좋은지 나쁜지 10분만 생각해보면 판단할 수 있다. 금융공학으로 며칠에 걸쳐 계산해도 그 물건의 본질은 파악할 수 없다. 외부환경이나 물건의 안정성 등을 넓은 안목을 갖고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리 사장의 지론이다. 마침 당시 부동산 시장은 상승 기조에 있었다. “최근 몇 년 간 재무구조 개선을 우선시했으나 이제 슬슬 적극 투자로 전환할 때”라고 사원들에게 발언한 적도 있다. 모리 사장의 결단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모리트러스트의 입찰가는 약 1300억엔(1조3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거래가격은 시세 1000억엔으로 예상되었으나, 복수의 펀드가 경쟁하면서 서서히 가격이 상승했다’고 유력 신문은 보도했다. 하지만 요시다 부사장은 ‘서서히 가격이 올라갔다’는 견해를 부정한다. 그에 따르면 ‘당사 기준의 이윤을 확보할 방침으로 처음부터 입찰금액(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사모펀드를 조성하지 않고, 모리트러스트 단독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부동산 펀드와 매수 경합을 벌인 것은 사실인 듯하다. 처음엔 싱가포르투자청(GIC)이 유력할 것으로 보였다. 사실 GIC 외에도 모리트러스트보다 높은 금액으로 입찰한 펀드도 있었던 것 같다고 관계자들이 전했다. 하지만 그러한 펀드회사들은 조건이 맞지 않거나 자금조달 계획에 차질을 빚어 교섭이 결렬됐다.

“자연경관이 좋아서 샀다”고 말하는 모리 사장의 말처럼 유력 라이벌이 씨름판에서 떠나가 저절로 굴러들어온 형태로 모 리트러스트가 8월 가조엔을 차지했다. 2008년 공동 투자로 매수한 ‘도라노몬 파스토랄’ 이후 처음 있는 대형 거래(인수액 2300억엔으로 2013년부터 모리트러스트가 단독 소유)다. 모리 사장은 “가조엔은 안정된 임대료 수입이 예상되기 때문에 장기 보유할 가능성도 있으며, 좋은 상대를 만나면 매각도 검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피스 빌딩 기준.

“슬슬 적극 투자로 전환할 때”

대형 매수에 착수한 곳은 모리트러스트만이 아니다. 옛 후지은행 계열인 부동산 회사 휴릭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올 2월 중순 휴릭의 부동산 투자부문 현장책임자인 니시카와 요시토 집행위원은 도쿄 디즈니랜드의 오피셜호텔 중 하나인 ‘도쿄 베이 마이 하마 클럽 리조트’에 머물렀다. 인수 교섭을 추진할 목적으로 시찰차 숙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데? 추진해 보자!’ 휴릭은 판단 속도가 중요하다는 니시우라 사부로 사장의 방침하에 대형 거래건이 나오자 사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재빠 르게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마이하마리조트 매각 협상도 사장의 사전 승낙을 얻었다.

도쿄 디즈니랜드의 입장객 수가 꾸준히 늘고 있어 마이하마 리조트는 앞으로도 높은 가동률을 이어갈 전망으로 우량 물건임에 틀림없다. 다만, 니시카와 집행위원은 현장을 체험하면서 교섭에 임할지 최종 판단하려는 것이었다. 관내는 디즈니랜드를 좋아하는 가족 단위나 젊은층 숙박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끈 것은 MICE(기업이 포상 목적으로 시행하는 사원여행 등 비즈니스 이벤트) 법인 고객이었다. 이벤트를 엿보니 가족들 앞에서 표창을 받고 눈시울이 젖은 회사원 모습이 보였다. 이 광경을 목격하고 ‘이러한 다양한 수요가 있는 호텔은 (매수 안건으로서)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 결과 휴릭은 7월 300억엔을 웃도는 가격(추정)으로 마이하라를 사들였다. 연 5%의 정도의 저렴한 이자에 자금을 조달했을 뿐만 아니라 자사 성장전략에도 맞는 물건이라는 게 니시우라 사장의 평가다. 휴릭은 주력인 오피스 빌딩 임대 수요가 중장기적으로는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작년 말부터 ‘3K’라고 불리는 관광·고령자·환경 관련 비즈니스를 강화하고 있다. 이번 호텔사업은 그 일환이다. 마이하라 리조트는 3월에 매입한 ‘머큐어호텔 긴자도쿄’가 입주한 빌딩에 이어 네 번째 호텔 관련 건물이다. 이 회사는 지난 9월에도 유료 양로원 등으로 구성된 복합시설 ‘도요스 시니어레지던스’를 매입했다.

모리트러스트나 휴릭의 움직임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최근 들어 도쿄 인근 부동산 시장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 미즈호 신탁은행 계열의 도시미래종합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 부동산 매매 거래액은 약 4조8000억엔으로 ‘미니버블’이라고 불렸던 2007년에 이어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올해 들어서도 열기는 이 어지고 있다. 상반기 거래액은 2조5000억엔으로 1996년 조사 개시 이래 최고액이었다. 도시미래종합연구소의 히라야마 시게 오 상무는 “빅딜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올 4월 오릭스 부동산투자법인이 ‘웨스트파크타워 이케부쿠로’(도쿄 도시마)를 205억엔에 매입했으며, 8월에는 온워드 홀딩스가 긴자 ‘도쿄 주차장 빌딩’을 110억엔(추정)에 사들였다. 히라야마 상무는 “현재 200억~300억엔 규모의 빌딩 상당수가 교섭 중에 있다”고 말했다.

도쿄 메구로 가조엔.

오피스 공급 물량 2017년까지 적을 듯

대형 거래가 증가하고 있는 건 오피스 수요가 늘고 있어서다. 실적 회복으로 오피스의 이전·확장을 도모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인터넷 접속사업을 하는 인터넷 이니시어티브는 지난 6월 사업 확대에 따른 사무소 확장 등의 목적으로 본사를 이다바시 그랑블룸으로 이전했다. 대형 EC몰(전자상거래 사이트)인 라쿠텐은 내년 8월에 본사를 후타코타마가와 라이즈로 이전한다. 시나가와 지역에서 두 개 빌딩으로 나눠 입주해왔지만 이전을 계기로 한 빌딩에 모이게 된다.

수요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오피스 공급량은 2017년까지 그리 많지 않을 전망이다. 때문에 ‘빌딩 쟁탈전’ 양상을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공실률이 떨어지고 임대료가 오르는 기조가 뚜렷해지고 있다. 대형 부동산 서비스업체인 CBRE의 조사에 따르면 도쿄 23구 오피스빌딩의 2분기 공실률은 4.8%로 6 분기 연속 하락했다. 마찬가지로 A등급 빌딩(연면적 1만평 이상) 의 평균 임대료도 2분기 3만 1650엔(평당)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3.4% 상승했다. 우량 빌딩의 경우 가격 상승세가 더 가파르다.

외국계 자본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 외국계 펀드 관계자는 “멀리 내다봤을 때 지금 구미가 당기는 시장은 일본 정도”라고 말한다. 가격과 임대료가 오르는 가운데 저금리가 이어지고 있어서다. 세계적으로 오피스 빌딩 공실률은 10% 전후가 일반적 이다. 하지만 도쿄 오피스는 수요가 유지돼 공실률이 낮다. 도시미래종합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해외 펀드나 리츠 등의 부동산 취득액은 2012년 953억엔에서 2013년 4293억엔으로 5배 수준으로 뛰었다. 오피스와 호텔이 입주한 도쿄 역 앞의 대형 빌딩 퍼시픽 센추리 플레이스 마루노우치는 32층짜리 대형 시설로 매각을 앞두고 있다. 유력한 인수자는 가조엔을 매수하려다 포기한 GIC다. GIC는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거래금액은 1700억엔 규모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중국의 민영 대기업 푸싱(復星)그룹은 8월 도쿄 텐노즈의 대형 오피스빌딩 시티그룹 센터빌딩을 사들였다. 푸싱은 지난 5 월 중견 부동산 자산관리회사인 이데라 캐피털매니지먼트를 인수하며 일본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번에 사들인 물건은 지상 25층짜리 연면적 약 3만㎡의 오피스 빌딩이다. 텐노즈 에 1992년에 완공된 워터프런트 복합개발 시포트스퀘어의 일부다. 인수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120억~130억엔 규모로 알려졌다. 가조엔 등에 비교하면 상당히 소규모이지만 의미는 크다. 이 빌딩은 시티은행이 일본 내 사업을 축소하면서 시장에 내놓은 것으로 전층을 임대해왔던 시티는 이곳에서 나간다. 가동률이 종래 100%에서 0%로 급락한 상태였다. 더구나 매매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푸싱은 예상보다 낮은 가격에 빌딩을 사들 일 수 있었다. 푸싱은 하네다 공항에 가까운 입지조건을 살려 외국 기업 유치를 노리고 있다.

일본 진출 후 영향력 키우는 중국 푸싱그룹

이런 모습을 보이는 부동산 시장을 두고 ‘버블 재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과거 버블기와 현재 부동산 시황은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용한 열광’이랄까? 현재 부동산 시장은 적극 투자에 나서는 기업이 많으나, 실체와 동떨어진 투기적 거래가 이어진 2007~2008년 무렵의 ‘미니 버블’과 같은 이상 과열은 아니다. ‘열기는 있지만 상당히 신중한 자세’라는 소리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매매 당사자 모두 조심스럽다는 얘기가 많다. ‘파는 쪽에서 비싼 값을 기대해 가격을 높게 설정해도 지금은 합리적으로 투자 판단을 하기 때문에 살 사람을 찾기 어렵다’ ‘낙찰되지 않아 몇 번이나 가격을 낮추는 물건도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물건을 평가해야 한다’와 같은 얘기가 나돈다. 앞서 살펴본 모리트러스트나 휴릭도 대규모이긴 하지만, 각 사의 성장 전략에 맞는 물건에만 투자하고 있다. 중국의 민영 대기업 산하 이데라 캐피털매니지먼트의 히라이 미키히 사 회장도 “투자할 때는 리스크에 비례한 이율을 노리고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외국계 펀드는 임대료가 앞으로도 상당히 상승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입찰하는 경우가 있다”며 과열 양상을 지적하는 관계자도 있다. 하지만 다른 부동산 개발업자는 “가장 비싼 가격으로 입찰한 회사가 최종적으로는 낙찰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고가 입찰에서 우선협상권을 얻어도 자금 조달에 실패해 최종 계약을 못하는 거래가 잇따른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버블이라기보다 수도권에 편중된 ‘극단적 버블’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전국으로 확산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일본 경제 주간지 東洋經濟 특약, 번역=김다혜
사진,자료= 동양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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