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일 관계 개선은 일본의 진정성에 달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어제 방한한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과 만나 양국 관계와 안보 관심사를 논의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최측근 외교 브레인인 야치 국장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후속 조치를 설명하고, 현재 진행 중인 북·일 협의에 대한 한·일, 한·미·일 간 공조 입장을 밝혔다. 한·일 관계에 대해선 “내년에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만큼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야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이병기 국정원장과도 면담했다.

 일본 외교안보의 컨트롤타워가 우리 외교안보 라인 책임자들과 두루 만나 협의를 하고,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채널을 구축한 것은 바람직하다. 한·일 양국이 영토와 일본의 역사 인식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고 해서 안보 분야 등에서의 협력까지 단절돼서는 곤란하다. 양국 간에는 외교 국장급 협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외교 차관 간 전략 대화도 진행됐다. 여러 채널을 통한 중층적 협의를 통해 현안을 풀어나가는 것이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 간의 관계일 것이다. 다양한 고위급 접촉은 바닥까지 곤두박질한 양국 국민의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를 끌어올리는 데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일본 정부의 진정성이다. 하나는 일본이 주변국 외교를 통해 한국을 견제하려고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아베 내각은 중국과의 정상회담 성사에는 큰 힘을 쏟고 있지만 한·일 정상회담에도 그만큼의 성의를 갖고 접근하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회의적인 시각이 강하다. 아베 총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언급하고 있지만 정작 양국 간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는 소극적이다. 일본이 중·일 정상회담을 먼저 성사시켜 한국에 초조감과 고립감을 안겨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한다면 후유증만 남길 뿐이다. 한국은 대국(大國) 외교에 좌지우지됐던 구한말의 조선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아베 내각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태도와 역사 인식 문제다. 아베 내각은 지금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전방위로 펼치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제주도에서 여성들을 강제로 연행해 군 위안부로 삼았다는 요시다 세이지(사망)의 증언을 근거로 한 과거 기사를 취소한 것을 빌미 삼아 명백한 역사까지 수정하려 시도하고 있다. 일각(一角)을 갖고 전체라고 하는 모양새다. 18일에는 여성 각료 3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반성·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한 아베 내각의 각료들이 A급 전범이 합사된 침략 전쟁의 상징적 장소를 찾은 것이다. 이래서는 한·일 간에 신뢰가 형성되기 어렵다. 설령 양국 간 정상회담이 이뤄져 결과물이 나온들 사상누각밖에 더 되겠는가. 일본의 올바른 역사 인식, 진정성 있는 조치를 거듭 촉구한다. 그것은 일본이 존경받는 국가로 거듭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