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가 지난달 “앞으로 여성이 빛나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임명했던 여성 각료 5명 중 2명이 20일 동시 사임했다. 한 달 반만의 불명예 퇴진으로 이들을 임명한 아베 총리의 체면도 구겨졌다.
사임한 각료는 오부치 유코(40) 경제산업상과 마쓰시마 미도리(松島みどり·58) 법무상이다. 각각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불거진 상태였다.
오부치 경제산업상은 지역구(군마현) 지지자들에게 유명 가수 공연을 보여주면서 후원회 등 정치단체가 비용 일부를 보전한 사실을 정치자금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친한파였던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차녀인 그는 지난달 당정 개편 때 집권 자민당 간사장으로 거명될 정도로 ‘차기 총리감’으로 평가돼 왔다.
마쓰시마 법무상은 지역구 축제에서 자신의 사진과 정책을 담은 부채를 돌린 게 화근이 됐다. 민주당 등 야당은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기부’에 해당한다며 마쓰시마 법무상을 검찰에 고발한 상태였다. 마쓰시마 법무상은 “(야당이) 그걸 부채라고 보자면 부채겠지만 정책 자료로도 볼 수 있다”며 야당의 추궁을 ‘잡음’으로 표현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TV아사히는 “아베 총리가 유엔 총회에서도 ‘아베 정권은 여성의 사회적 활약을 추진한다’며 뽐내던 여성 각료 등용이 역으로 부메랑이 돼 아베 정권의 위기를 초래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경기 부양책인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일본 모든 분야에서 2020년까지 여성 지도자의 비율을 30%에 맞추겠다”는 목표를 내걸며 지난달 3일 아베 총리를 제외한 장관 18명 중 5명(28%)을 여성으로 채웠다. 역대 내각 중 최다였다. 아베 총리 주변에서도 이를 적극 홍보하기 위해 지난달 3일 새 내각 기념사진 촬영 때 아베 총리 주위를 5명의 여성 각료가 둘러싸도록 배치했다. 덕분에 내각 지지율도 상당히 올랐다.
하지만 2012년 12월 취임 이후 단 한 명의 장관도 사퇴하지 않고 순항하던 아베 정권의 발목을 잡은 건 공교롭게도 여성 장관이 됐다. 일각에선 이번에 낙마한 두 여성 장관이 아베 정권 내에선 드물게 보수 우익 결사체인 ‘일본회의’ 소속이 아니란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오부치 장관의 경우 우익 성향의 주간지 주간신초(新潮)의 보도를 통해 문제가 제기됐다.
이와 함께 일 정치권에선 이번 여성 각료 2명의 사임으로 아베 1기 내각 때의 ‘악몽’이 되풀이 되는 것 아니냐며 향후 향배를 주목하고 있다. 1기 아베 정권(2006년 9월~2007년 9월) 당시는 5명의 장관이 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사임하면서 정권의 기반이 무너졌다. 특히 2007년 5월 말부터는 거의 한 달에 한 명 꼴로 각료가 자살하거나 물의를 일으켜 아베 총리 퇴진을 앞당겼다.
아베 총리는 당시 문제가 된 각료를 옹호하거나 시간 끌기를 하다 여론의 포화를 맞았다. 이를 잘 아는 아베 총리는 20일 전광석화같이 두 장관을 경질했다. 또한 “(사임한 장관을) 임명한 책임은 총리인 나에게 있다. 이런 사태가 된 데 국민에게 깊이 사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57) 외상의 사촌형인 미야자와 요이치(宮澤洋一·64) 참의원을 경제산업상, 여성인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61) 전 저출산담당 장관을 법무상에 임명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