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여성 등용 뽐내더니…" 각료 2명 동시 낙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가 지난달 “앞으로 여성이 빛나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임명했던 여성 각료 5명 중 2명이 20일 동시 사임했다. 한 달 반만의 불명예 퇴진으로 이들을 임명한 아베 총리의 체면도 구겨졌다.

 사임한 각료는 오부치 유코(40) 경제산업상과 마쓰시마 미도리(松島みどり·58) 법무상이다. 각각 정치자금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불거진 상태였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부치 경제산업상은 지역구(군마현) 지지자들에게 유명 가수 공연을 보여주면서 후원회 등 정치단체가 비용 일부를 보전한 사실을 정치자금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친한파였던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차녀인 그는 지난달 당정 개편 때 집권 자민당 간사장으로 거명될 정도로 ‘차기 총리감’으로 평가돼 왔다.

 마쓰시마 법무상은 지역구 축제에서 자신의 사진과 정책을 담은 부채를 돌린 게 화근이 됐다. 민주당 등 야당은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기부’에 해당한다며 마쓰시마 법무상을 검찰에 고발한 상태였다. 마쓰시마 법무상은 “(야당이) 그걸 부채라고 보자면 부채겠지만 정책 자료로도 볼 수 있다”며 야당의 추궁을 ‘잡음’으로 표현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TV아사히는 “아베 총리가 유엔 총회에서도 ‘아베 정권은 여성의 사회적 활약을 추진한다’며 뽐내던 여성 각료 등용이 역으로 부메랑이 돼 아베 정권의 위기를 초래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경기 부양책인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일본 모든 분야에서 2020년까지 여성 지도자의 비율을 30%에 맞추겠다”는 목표를 내걸며 지난달 3일 아베 총리를 제외한 장관 18명 중 5명(28%)을 여성으로 채웠다. 역대 내각 중 최다였다. 아베 총리 주변에서도 이를 적극 홍보하기 위해 지난달 3일 새 내각 기념사진 촬영 때 아베 총리 주위를 5명의 여성 각료가 둘러싸도록 배치했다. 덕분에 내각 지지율도 상당히 올랐다.

 하지만 2012년 12월 취임 이후 단 한 명의 장관도 사퇴하지 않고 순항하던 아베 정권의 발목을 잡은 건 공교롭게도 여성 장관이 됐다. 일각에선 이번에 낙마한 두 여성 장관이 아베 정권 내에선 드물게 보수 우익 결사체인 ‘일본회의’ 소속이 아니란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오부치 장관의 경우 우익 성향의 주간지 주간신초(新潮)의 보도를 통해 문제가 제기됐다.

 이와 함께 일 정치권에선 이번 여성 각료 2명의 사임으로 아베 1기 내각 때의 ‘악몽’이 되풀이 되는 것 아니냐며 향후 향배를 주목하고 있다. 1기 아베 정권(2006년 9월~2007년 9월) 당시는 5명의 장관이 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사임하면서 정권의 기반이 무너졌다. 특히 2007년 5월 말부터는 거의 한 달에 한 명 꼴로 각료가 자살하거나 물의를 일으켜 아베 총리 퇴진을 앞당겼다.

 아베 총리는 당시 문제가 된 각료를 옹호하거나 시간 끌기를 하다 여론의 포화를 맞았다. 이를 잘 아는 아베 총리는 20일 전광석화같이 두 장관을 경질했다. 또한 “(사임한 장관을) 임명한 책임은 총리인 나에게 있다. 이런 사태가 된 데 국민에게 깊이 사죄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57) 외상의 사촌형인 미야자와 요이치(宮澤洋一·64) 참의원을 경제산업상, 여성인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61) 전 저출산담당 장관을 법무상에 임명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