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청년 일자리, 양보다 질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한국의 실업률은 3% 대 수준이다. 경제학에서 보통 4% 이하를 완전고용상태로 진단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어도 양적으로 일자리가 부족한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일자리 부족 문제는 고질병이 된 지 오래다. 청년들은 극심한 취업난으로 대학 입학 때부터 취업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하지만 기업들은 오히려 일한 사람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같은 나라 안에서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취업률이 아니라 ‘취업 만족도’에 있다. 취업자 가운데 본인의 일자리에 만족하고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기업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만족할 만한 인재를 뽑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실업률은 양적인 수치일 뿐, 일자리의 질은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불만이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이공계와 인문계의 수급불일치 현상을 들 수 있다. 산업계에 필요 인력은 이공계지만 우리 청년들은 이공계를 기피한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은 고용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해외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얼마 전 국내 대기업이 약 7조원을 투자해 중국 시안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설립했다. 시장수요 등 여러 경제적 요인을 고려한 결정이었지만, 국내 엔지니어 부족도 주요한 이유였다고 한다.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수천 명의 고급 엔니지어가 필요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만한 대규모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 본인의 적성과 재능에 대한 탐색 부족이다. 학생 시절 내가 무엇을 잘하고, 하고 싶은 것이 무얼까에 대한 고민보다 청년들은 남들 따라하기에 바쁘다. 우리나라 의과대 학생 중 의학이 내 천직이다라고 생각하고 선택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실제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의 경우, 졸업생 중 10% 정도만 농업분야에 취직한다고 한다. 전공은 성적 순으로 선택하고, 취업은 급여와 안정성을 쫓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보다 남들을 따라가다보니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셋째, 직업과 산업 불균형이다. 미국에는 직업의 종류가 3만개, 일본에는 2만개, 한국에는 1만개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없는 2만개 직업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포춘 500대 기업에 50여개의 업종이 있지만 그 중 한국 기업은 몇몇 업종에서만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나머지 업종에는 내놓을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이 없는 외발이 산업구조다.

 마지막으로 중소·중견기업의 성장 정체증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직할 때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회사 비전이라고 한다. 회사가 계속 성장해야 승진도 하고 연봉인상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중소·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중소기업 대졸 신입사원 세 명 중 한 명은 입사 1년도 안돼 퇴사한다고 한다. 피터팬 증후군에 빠져 성장하지 않는 중소기업을 우리 청년들은 외면할 뿐이다.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가 불만족스러운 일자리 시장은 단순히 기대치를 조정하는 선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우선 기업이 고용하고 싶은 쓸만한 인재가 많아져야 한다. 대학의 학제를 산업수요에 맞도록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학생들은 영어 등 취업용 스펙만을 쌓을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스펙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필요하다. 산업구조 측면에서도 규제를 풀어 잃어버린 일자리, 잃어버린 업종을 되찾는 것도 시급하다. 더불어 중소, 중견 기업이 대기업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은 대기업이 되는 순간 수많은 규제가 눈 앞에 기다리고, 핍박의 대상이 돼버린다.

 논어에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보다 못하다’란 말이 있다. 양질의 일자리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자리다. 청년들은 적성과 재능에 따라 직업을 찾고 사회는 그러한 일자리를 유연하게 제공해 줄 수 있는,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만족한 사회가 되길 희망해 본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