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제 파탄 낼 수 있는 디플레이션 조짐 … 철저 대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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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디플레이션이란 물가가 하락하면서 경제활동 전반이 위축되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가 성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쪼그라들면서 자칫하면 저성장의 질곡에 빠지는 것이다. 일본의 장기불황을 뜻하는 ‘잃어버린 20년’이 그렇게 시작됐다.

 한국은행은 9월 생산자물가가 8월보다 0.3% 떨어진 105.24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1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생산자물가가 떨어지면 생산자가 똑같은 양의 물건을 내다팔아도 수입(매출액)이 줄어든다. 생산자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에 반영된다. 매출액의 감소와 소비자물가 하락은 근로자의 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소비부진과 투자위축의 악순환을 부른다. 경제 전체가 활력을 잃고 주저앉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지난 두 달간의 생산자물가 하락만으로 디플레를 단정하긴 이르다. 또 이른 추석과 국제유가 하락 등 계절적 요인과 대외 요인의 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2012년 말 이후 생산자물가의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디플레이션의 가능성을 충분히 우려할 만하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KERI)은 20일 우리나라의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디플레이션 취약성지수가 1992년 일본이 디플레이션에 진입할 당시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당장 디플레이션에 빠진 것은 아니지만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는 얘기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주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수준으로 내린 것도 디플레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다. 최경환 경제팀은 출범 직후 ‘일본식 장기불황’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확장적인 거시정책을 펼쳤으나 아직은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만성적인 인플레도 문제지만 디플레는 경제를 파탄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위협이다. 초기에 대비하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침체와 불황의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오랜 경기부진 끝에 통계적으로도 디플레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이상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