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중심의 관료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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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통령의 각부처 업무파악 방식이 올해부터 이색적인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대통령이 각부처에 들러 올해 업무계회을 듣는 종전의 방식대신 .각부처의 장이 청와대를 방문, 소관업무를 직접 보고하는 방식이다. 더욱 특이한 것은 장관은 개략적인 보고에 그치고 구체적인 실무계획은 담당 국장이 보고하는 일이다. 비로소 실무책임자로서 국장의 역할이 돋보이게 되어 관료사회에 새로운 풍토가 조성되고있다.
국가기관의 국장이라고 하면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공무원의 꽃」이라고 한다. 전문지식과 경륜이 모두 원숙한 경지에 이르러 관료엘리트로서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국장에이르는 승진의 길도 매우 좁아 중앙부서 공무원 43만여명 가운데 국장급인 이사관과 부이사관은 모두 1천1백여명, 4백대1의 경징률이다.
직업공무원제를 채택하고있는 어느나라의 경우에서나 국장급은 관료사회의 핵심이다. 한일각료회담의 초기에 양국장관이 합의에 도달한 사항도 일본측 국장급의 반론제기로 재론에 붙여진 경우가 허다했다. 당시한국측 각료들은 이를 매우 불쾌히 여겼으나 나중엔 성숙된 관료체계에서의 국장의 역할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중앙집권제가 고도로 발달한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백발의 국장이 젊은 장관을 실무면에서 조언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이들나라에서 장관은 정치적 결심과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리일뿐 모든 실무적 절차와 집행은 국장선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도 제1,2공화국까지는 그랬다. 특히 내각책임제를 도입했던 제2공화국에선 정치적으로 임명되는 장관과 정무차관이 대외업무를 대표하는데 비해 정무차관이하 국장급이 해당부서의 실질적 업무를 관장했던 것이다.
제3,4공화국에 이르러 테크너크래트(전문공무원)의 중요성은 널리 인식됐으나 오히려 그 역할은 축소된 느낌이 없지 않았다.
「일하는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만기총람하는 가운데 장관은 국장으로 국장은 과장으로 격하된 느낌마저 없지 않았다.
그들의 전문성과 창의성은 위축일로를 걸었고 관료의 할일은 오로지 요령껏 웃사람의 눈치만 살피는 일이 고작이었다.
직업공무원제의 장점이 사장된 결과를 빚게됐다.
제5공화국에선 특히 공직자의 청렴과 솔선수범 적극적자세를 요구한다. 전대통령도 중앙부서의 업무보고를 중간결산하는 자리에서 『공무원들의 무사안일한 자세는 배격돼야한다』 고 강조했다. 특히 국장급들은『자부심과 소신을 가지고 직무에 충실할 것과 현장의 실태를 파악해서 정책입안과 집행에 반영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모든 공직자에게 다 해당되는 얘기지만 특히 관료사회의 핵심인 국장급 공직자들이 지녀야할 자세는 권위의식의 불식과 책임을 감수하는 일이다.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지나친 권위의식은 오히려 방해가 될때가 많다.
항상 겸허하게 국민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어떤 일이 국리민복에 보탬이 되는가를 창출해야할 것이다. 특히 웃사람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처럼 전문가답지 못한 일은 없다. 장관들이 단명으로 그친것에는 국장의 책임도 많다는 전대통령의 지적도 바로 전문가들의 소신에 찬 조언이 없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민간주도의 경제, 자율화의 시대를 지향하는 우리로서는 성숙한 관료체제가 어떻게 국민의 사기를 돋우고 국민앞에 모범을 보일지가 큰 과제이며 관심이다.
핵심적 관료들의 일관된 봉사정신과 전문가의식의 확립을 이런 점에서 다시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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