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아내를 비난하는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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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형경
소설가

개인적으로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어떤 싱글 여성들은 결혼한 남자가 자기 앞에서 아내에 대한 불평불만을 토로하면 그것을 자신에 대한 호의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누구를 사랑하든 자유지만, 그들 중에는 그 사랑이 끝난 후 이용당했다는 느낌과 함께 “그가 이혼하겠다고 말했다”는 부도 수표를 꺼내 보이는 이가 있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젊은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아내를 험담하는 전략을 쓰는 남자가 먼저인지, 오이디푸스 단계를 잘 이행하지 못해 경쟁자를 젖히고 상대를 쟁취하고 싶어하는 여자가 먼저인지. 그런 여성들을 위한 명언을 들은 일이 있다. “유부남은 유부녀에게 맡겨라.” 옳고 그름은 판단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아내에 대한 의존성이 높은 남자일수록 밖에서 아내를 비난하는 불공정 거래를 하기 쉽다. 무의식에 있는 의존성은 자각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지 어떤 대상을 통해 채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불만이 쌓여만 간다. 그런 남자들이 간혹 자녀 앞에서도 아이 엄마를 비난하는 일은 더욱 나쁘다. 함께 사는 배우자에 대해 판단하든, 이혼 후 헤어진 아내를 험담하든 그 행위는 아이의 발달에 치명적으로 나쁜 영향을 끼친다.

아이들은 부모 중 한쪽을 비난하는 말을 들으면 자신이 비난받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양쪽 부모와 동일시하여 만들어 가진 내면의 일부가 나쁜 것인 듯 여겨지면서 스스로를 나쁜 아이로 인식하게 된다. 자존감을 형성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한 배우자가 서로 싸우고 비난하는 환경에서는 자녀가 양가성을 통합할 수 없게 된다. 아이 내면에 갈등하는 두 개의 자아, 대립되는 두 가지 정서가 고스란히 흡수되어 고착된다. 그런 아이는 나중에 세상을 흑백논리로 파악하고 불편한 감정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무엇보다 나쁜 점은 아이가 환상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현실의 어려움에 대처할 수도 없는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환상을 사용한다. 비록 야단은 치지만, 떠나서 곁에 없지만 부모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는 믿음과 환상에서 생의 에너지를 얻는다. 한쪽 부모를 비난한다는 행위는 아이가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좋은 부모 이미지를 깨부수면서 생의 에너지마저 빼앗는 결과를 낳는다. 자기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부모가 어떻게 자녀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일은 가끔 두렵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