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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산혁명'으로 분열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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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일러스트=강일구]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중화민족의 대부흥을 뜻하는 ‘중국몽(中國夢)’. 이 차이나 드림과 관련된 두 가지 의미심장한 일이 최근 한꺼번에 일어났다. 하나는 ‘우산혁명’으로 통하는 홍콩의 민주화 시위요, 또 하나는 중국 기업의 뉴욕 최고급 호텔 월도프 아스토리아 구입이다.

 우산혁명의 불똥이 비슷한 처지의 마카오를 거쳐 본토로 옮겨붙으면 어떻게 될까. 시간은 걸리겠지만 중국 전체가 쪼개질 거라는 게 서방 언론들은 희망(?) 섞인 분석이다. 실제로 우파 언론 월스트리트저널은 “홍콩 사태가 중국 다른 지역에서 연쇄 파급효과를 미치지 않을까 중국 지도부는 두려워한다”고 전했다. 그렇지 않아도 끓고 있는 티베트·위구르 민족주의에 불을 댕겨 중국 대륙이 분열되길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1990년대 소련이 쪼개지면서 급속히 약화됐던 즐거운 추억이 아직도 아련한 모양이다.

 반면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매입은 경제 패권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해석하건대 전자를 정치적 위기의 징조라면, 후자는 중국 경제의 굴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중국은 위기를 목전에 둔 것인가, 아니면 ‘팍스 시니카(Pax Sinica·중국에 의한 평화로운 시대)’를 향해 순항 중인가.

 비관론이 맞다면 홍콩의 우산혁명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수출 5597억 달러 중 중국 시장 비중은 26.1%. 그 뒤를 잇는 미국(11.1%)·일본(6.1%)·홍콩(4.8%)·싱가포르(3.9%) 등 네 나라를 합쳐도 모자란다. 중국이 무너지면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될지는 불문가지다.

 그렇다면 이 상반된 양 신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이 시그널을 적확히 꿰뚫으려면 서방과는 현격히 다른 중국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다. 단적인 사례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 간의 상관관계다.

 미국 남부의 명문 듀크대 경영대학원에는 설립 정신을 함축한 ‘다원성 선언문’이 걸려 있다. “기술 혁신의 원천인 우리 사회 내의 다원성을 활용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게 그 요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일찍이 설파했듯 경제 성장의 원동력은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이다. 그럼 혁신은 어디서 나오나. 구미 학자들은 이질적 사고 방식을 포용하는 ‘다원주의’에서 비롯된다고 확신한다. 이를 증명하는 실증적 조사도 숱하다.

 그렇다면 거주 이전의 자유마저 희미한 중국은 어떨까. 서방 논리대로라면 질식할 것 같은 사회 통제로 창의적 혁신이 일어날 리 만무하다. 그래서 중국의 쇠퇴를 예견하는 강력한 논리 중 하나가 다양성의 결핍이었다.

 하나 현실은 정반대로 진행돼 왔다. 2011년 이래 세계에서 3년째 가장 많은 특허를 낸 나라는 중국이다. 지난해 중국에선 40만 건의 특허 등록이 이뤄져 일본(25만 건), 미국(18만 건)을 훌쩍 제쳤다. 미국 잡지 패스트컴퍼니 선정 ‘2014년 가장 창조적 기업’ 랭킹 3위는 저가 핸드폰 돌풍을 일으킨 중국의 기업 샤오미(小米)였다. 인터넷 검색 엔진 바이두(百度), 온라인 쇼핑몰 알리바바 등도 세계적인 혁신기업으로 꼽힌다.

 왜 이런 착오가 일어나게 된 걸까. 이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경제·산업 분야에서만큼은 거의 완벽한 수준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중국식 시스템이 잘 돌아간 덕분이다. 소련 공산주의에 익숙한 서양에선 정치는 막혀 있으되 경제는 한껏 풀려 있는 체제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거다.

 이 같은 문화적 몰이해에 따른 착시 현상으로 30년 전부터 ‘중국 붕괴론’은 유령처럼 떠돌아다녔다. 특히 92년 미 역사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소련의 붕괴 이후 『역사의 종언』을 출간한 무렵엔 극에 달했다. 그는 민주주의 진영의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며 중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가 이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 예언했다. 그러나 중국은 그 후에도 무너지기는커녕 연평균 8~10% 수준의 고도 성장을 유지하며 일당지배 체제를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내부 모순에 따른 중국 붕괴가 이뤄지지 않자 그 후로 고개를 든 게 ‘중국 분열론’이었다. 티베트·위구르족을 위시한 중국 내 소수민족들이 들고 일어나 중국이 쪼개질 거라는 얘기다.

 그러나 내재적 접근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이 역시 실정 모르는 이야기라고 비판한다. 민주화 운동이 가열돼 공산당이 전복되더라도 중국이 분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민주화 운동의 주체세력 역시 한족이어서 나라가 쪼개지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또 중국 영토의 60%를 소수민족이 차지하긴 하나 인구 수에선 8% 안팎이다. 공산 정권 몰락 후 분열된 옛 소련의 경우 러시아인이 70%에 불과했다. 양쪽이 비교가 안 된다.

 결국 홍콩의 우산혁명이 본토로 확산되더라도 중국의 분열이 촉발될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한다.

 서방에서 중국을 분석할 때 문화적 배경을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분석 틀을 고집할 때가 잦다. 오피니언 리더 중 서양에서 유학한 이들이 유독 많은 한국이다. 화석처럼 굳어진 서양식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정적 오판을 범할 수 있음을 늘 유념해야 한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