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혼선 부추기는 북 발언에 끌려다니지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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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방북 중인 미국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더 많은 핵폭탄을 제조 중"이라고 말했다. 3일 전엔 6자회담의 복귀 의사를 흘려 기대를 갖게 했다가 정반대의 엉뚱한 소리를 한 것이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 의사를 표명했을 때는 희망적이었다. 그러나 김 부상의 발언은 이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겠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만 표명하고 그 시기에 대해선 입을 꾹 다문 의도도 드러났다. 한편으론 대화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론 '우리가 핵 보유국이 됐으니 6자회담은 핵 군축회담이 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 위한 것이다. 핵 포기를 촉구하는 국제적 요청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것이다.

북한은 협상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재처리를 완료했다' '핵을 보유했다' 등의 발언을 동시에 해 왔다. 일종의 교란작전을 구사했다. 한편으로는 협상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면서 다른 한편은 자신들의 협상 위치를 높이려는 계산이었다. 이번 김계관의 발언 역시 이런 기조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협상이 이런 말장난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큰 오산이다. 결국은 실체가 문제다. 북한이 정말 핵무기를 가졌다면 무슨 말을 하든 그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미 양국은 북한의 이러한 말장난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11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간에 '북핵 목표'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북한이 핵 보유국으로 계속 가려고 하는지에 대해 두 정상이 인식을 같이 한 뒤 각각의 경우에 따른 구체적 대안이 나와야 한다. 6자회담이 재개돼도 이것이 '회담을 위한 회담'이 돼서는 안 되고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면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이런 구체적 합의 없이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평화적으로 해결키로 했다'는 선에서만 그친다면 앞으로도 계속 북한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