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용·산재보험이 눈먼 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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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감사원이 적발한 노동부 산하 5대 기금의 운용 행태를 보면 어처구니없다. 징수와 운용은 주먹구구요, 지출은 퍼주기 식이었다. 근로자.사업주에게 공동 징수하는 고용보험은 실업급여 지급과 취업 지원을 위한 핵심 사회안전망이다. 그 기금이 한 해 지출액의 네 배에 가까운 8조4485억원이 쌓여 있다. 실업률이 6.3%였던 외환위기 때 보험료율을 최고 67%나 올렸지만 그 뒤 실업률이 3%대로 떨어져 매년 1조원씩 남았기 때문이다. 경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보험료 때문에 기업과 국민의 부담만 늘린 꼴이다.

또 보험을 징수하는 근로복지공단과 피보험자를 관리하는 지방노동사무소 간에 기본적인 데이터조차 교환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전체 근로자의 24%인 235만9000여 명이 고용보험을 납부하고도 정작 적기에 보험 혜택을 못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상시 구조조정으로 실업 위기에 노출된 근로자는 안중에도 없는 셈이다.

눈먼 돈이니 지출도 마음대로였다. 정부 일반회계로 해야 할 청소년 종합직업체험관 '잡월드' 사업비 2127억원을 고용보험이 떠안았다. 세부 지원사업 중 절반이 넘는 8개는 중도 폐지되고 8개가 사업 변경됐다. 지원 남발의 한 단면이다.

산재보험기금도 악덕 산재 환자들의 밥으로 전락했다. 재해별 요양기간 제한이 없어 '병원 쇼핑'을 하면서 기금을 축내는 경우가 터무니없이 많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재 환자 중 23.2%인 1만4000여 명이 2년 이상, 특히 2000명은 10년 넘게 요양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평균 임금의 70%를 받으면서 앉아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사회안전망을 갖춰 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준조세인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기업 활동과 국민생활에 직결된 기금이다. 그럴수록 정밀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보험료율은 경제상황에 따라 정밀한 수요 예측을 통해 탄력적으로 결정돼야 할 것이다. 눈먼 돈처럼 펑펑 쓴 공무원들은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민의 피땀으로 조성된 소중한 기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