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통신] "총 한자루에 15달러, 총알은 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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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무, 다 완 둘라르(아저씨, 이거 1달러)."

지난 19일 티그리스강 서안에서 학교 갈 나이도 안된 한 아이가 아랍어와 영어를 섞어 가며 내게 말을 걸었다. 아이는 소총의 총알을 사라고 졸랐다.

"타알 타알 후나(이리 빨리 와봐요)."또 다른 아이가 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유수프(12)가 보여준 것은 버려진 이라크 야포와 그 옆에 수북이 쌓인 포탄들이었다. 포를 조작하는 자기 모습을 사진기에 담으라는 것이다. 소년은 둥근 핸들을 돌리면서 포신을 올렸다.

전쟁은 끝났지만 바그다드 시내에는 버려진 무기와 불발탄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시민들에게 심각한 위험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일부 무기들은 폭도들에 의해 '재활용'되고 있다.

바그다드 시내에는 아직도 폭음과 총성이 끊이지 않는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들리는 대규모 폭발음은 수집한 무기와 탄약을 미군이 폭파하는 소리다. 또 약탈범 및 일부 저항세력과의 교전 혹은 시민들 사이에 발생하는 오발 사고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총성이 들린다.

바그다드 서부 아부가리브 지역 도로변에서는 매일 장이 선다. 대부분 약탈된 물품들이 교환.매매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총과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옷 속에 총기를 감추고 있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가구와 사무용품을 파는 가판대를 지나면 총기를 든 사람들이 더욱 많아진다. 무기를 거래하는 곳이다. 가판대도 없다. 사람들은 땅바닥에 소총.권총.수류탄.대검 등 다양한 무기들을 늘어놓고 흥정을 한다.

AK-47 소총 가격을 물었다. "30달러. " 뒤돌아서는 나를 붙잡으며 상인은 "15달러에 총알은 서비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상인은 "전쟁은 끝났지만 총기를 소유한 사람들이 늘면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너도 나도 총기를 구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른들의 무기 소지와 거래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총기와 탄약의 위험성에 대한 아이들의 무감각이다. 학교가 문을 닫자 아이들은 대낮부터 놀이거리를 찾아다닌다. 축구공과 더불어 총기와 불발탄은 어린이들의 인기 있는 놀이기구가 됐다.

티그리스 강가. 아이들이 앉아서 무언가를 조물락조물락 하더니 성냥을 켜 병속에 넣고는 도망갔다. 불꽃덩어리들이 병에서 3m 이상 솟아올랐다. 미군이 투하한 집속탄의 불발 소폭탄에서 화약을 분리해 불꽃놀이를 하는 것이다. 불꽃이 사라지자 아이들은 검은 비닐봉지에서 또 하나의 노란색 불발탄을 꺼냈다.

"아저씨 멋있죠. 가장 인기있는 놀이인데 아무나 할 수 없어요." 아이는 우쭐해했다. "20여년 간의 전쟁과 폭격을 겪으면서 무기에 대한 공포심을 상실했다"고 동네 할아버지가 말했다.

강변 대추야자 나무 숲에는 여러 개의 이라크군 벙커가 그대로 남아 있고, 벙커 주변에는 포장도 뜯지 않은 러시아제 대전차 로켓포 RPG7의 포탄들이 굴러다녔다.

벙커들 안에는 많은 탄약과 소총이 무너져 내린 흙 속에 반쯤 덮여 있었다. 사담 페다인 병사들이 아직 숲 속에 은신해 있다는 소문 때문인지 아이들이 접근하지 않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사진 설명 전문>
티그리스 강가에서 이라크 소년들이 불발탄을 이용, 불꽃놀이를 하고 있다. 집속탄의 불발 소폭탄에서 분리한 화약을 병에 넣고 불을 붙인 뒤 도망가면서 불꽃을 구경하고 있다. 매일 보는 장면인지 멱감는 아이는 관심이 없다. [바그다드=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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