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백약무효 경제대책, 시장에 귀 기울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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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다. 정부의 경기 대책마저 무기력증에 빠져들고 있다. 재정이나 금융 등 경기 조절을 위한 정책 수단들이 도무지 먹혀들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9일 정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콜금리의 인상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지금 수준에서 동결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학 교과서대로라면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추는 게 옳다. 그러나 실질금리가 거의 제로 수준인 마당에 금리를 더 내린다고 경기가 살아날 것 같지 않다. 시중에 돈이 모자라거나 금리가 높아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리를 올릴 수도 없는 처지다. 최근 부동산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부동자금을 흡수하자면 금리를 올려야 마땅하지만 경기가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금리 인상 얘기를 꺼낼 수도 없다. 결국 한은은 딜레마에 빠져 이쪽저쪽 눈치를 보느라 6개월째 콜금리를 붙들고 앉아 있다.

재정 정책도 약발이 안 듣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상반기에 올해 예산의 59%인 100조원을 쓸어넣고 있지만 경기는 꿈쩍도 않고 있다. 추경예산을 편성하자는 얘기도 나오지만 재정적자만 늘린다는 지적에 찔끔하고 있다. 재정자금을 퍼부어 경기가 살아난다면 조기 집행이든 추경이든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정부 예산을 무작정 아무 곳에나 쓸 수도 없고, 막상 돈을 쓰려 해도 주요 국책사업마저 제대로 진척되지 않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결국 금융과 재정정책 모두 경기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로서는 이제 거시경제정책으로는 내놓을 카드가 별로 없다. 백약이 무효인 지경이다. 돈을 풀어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원인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우선 경기 진작에 가장 효과적인 건설부문은 부동산 대책에 눌려 꽁꽁 얼어붙었다. 대기업의 투자는 국가 균형발전의 논리에 밀려 각종 규제로 발목이 묶여 있다. 진정으로 경기를 살릴 의지가 있다면 약효도 없는 거시정책에 매달릴 게 아니라 차제에 발상을 바꿔야 한다. 시장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귀를 기울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