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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해진 경제체질 「실무처방」을 기대|「국민적합의」바탕 정책 펼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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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제팀의 개편은 우리경제의 체질개선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우리경제가 안고있는 구조적 문제들이 얼마나 복합적인지를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두번째의 석유쇼크를 겪으면서 결정적으로 노출되어온 우리경제의 취약성은 이제 더 이상 안정이든 확대든 일의적인 해법으로는 풀기 어려운 과제로 밝혀진 셈이다. 설사 그것이 진단이나 처방의 문제가 아닌 시간의 우수라 해도 손쉽게, 경제구성원간의 큰 마찰없이, 그리고 단기간에 수확할 수 있는 과실이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해졌다.
70년대 후반까지의 경제는 워낙 급속히 늘려가는 과정이어서 대응이나 단기처방만으로 경제를 다루기에도 바빴다. 숱한 시행과 처방이 있었고 성공과 착오도 겪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체질과는 무관한 것들이었다. 새삼 경제체질이 문제된 것은 79년 이후 경제의 효율이 안팎에서 급격히 떨어진 뒤부터 였다. 정부·기업할 것 없이 생산성·수익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나라안팎으로 채무는 누적되었으며 인플레는 구조화되면서 체질과 경제구조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바 있었다.
지난번 경제팀의 1차적과제가 이런 70년대 경제의 후유증, 예컨대 뿌리깊은 인플레구조와 산업의 불균형, 계층간 격차와 산업의 비효율을 시정하는데 있었던만큼 1년반동안의 정책기조는 강력한 인플레억제로 집약되어왔다.
아마도 최초로 본격시도된 반인플레정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토록 기대하던「국민적합의」를 얻는데는 미흡한 셈이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있는 경제주체들인 기업계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들은 불황과 긴축이라는 급격한 경제환경의 변화에 한번도 적용해본 경험이 없을 뿐아니라 재무구조나 기업효율이 변화를 지탱할 여력을 갖지 못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신경제팀의 반인플레 정책은 결국 민간기업들에 의해 이론에 치우친 지수경제 정책으로 받아들여졌고 종국에는 현실에 대한 인식은 물론, 처방에서조차 현격한 견해차이와 보이지 않는 알력으로까지 번져 왔었다. 이런 저문의 사정으로 보아 새 경제팀의 정책기조는 슬로건이야 어떻든 이전의 정책노선과는 궤도를 달리할 공산이 크다.
새팀의 면모가 이론형이라기보다 실무, 또는 현실주의에 가깝고 대부분이 기업 경력을 갖고 있어 정부와 민간의 인식의 격차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격차의 해소는 필연적으로 「현실적 경기 회복」또는「긴축의 완화」를 강력히 요청하는 업계의 요구에 정책방향이 경사될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기업계는 지난해 경제가 비록 지수로는 성장과 물가에서 성과를 거두었지만 내실에서는 더 나빠졌다고 주장한다.
국민경제로 봐도 대외채무가 더 누적되었고 기업은 기업대로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투자·소비도 계속 침체됐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경기회복은 숫자에 그칠 뿐 실속이 없었다는 것이 기업, 특히 대기업들의 불만이다.
『정부관리들이 민간기업을 너무 모른다』는 신임총리의 평가도 이런 기업계의 불만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렇게 볼 때 새 팀의 제1성이 비록 물가안정을 내걸고 있지만 종전까지의 반인플레 기조는 상당한 신축성을 가지고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 신축성의 진폭에 따라 앞으로의 경기국면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당면한 불황의 탈출이나 정책의 신축성은 시급한 과제일 뿐 중요한 과제는 아니라는데 우리경제의 어려움이 있다.
경제의 효율을 높이거나 안팎의 경쟁을 버텨낼 강인한 체질의 구축은 단시일안에 이룰 수 없는 반면 이미 너무 떨어진 효율과 너무 나빠진 상무구조자체가 그런 장기간의 인내와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설사 그런 여력이 있을 때에도 그것을 받아들일 인내를 보여준 적이 정부·기업 어느 쪽도 거의 없었다.
따라서 새 경제팀이 명분으로는 5차5개년 계획의 시발과 발맞춘 경제분위기 쇄신의 의미를 부여받곤 있으나 실제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이전의 팀들로부터 이월된 해묵은 과제일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영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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