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장규 칼럼

성공한 노무현, 실패한 노무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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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노무현 대통령은 훗날 역사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까. 때 이르게 이런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임기의 절반밖에 안 됐는데도 벌써 레임덕 조짐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차제에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도 두루뭉수리로나마 앞당겨 시도해 보자. 노 대통령은 유난히도 독특한 인물이어서 역사 기록에서도 시비할 게 많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성공한 노무현'과 '실패한 노무현'의 두 모습은 너무도 극명하게 대비를 이룰 것 같다.

성공한 노무현-. 아무리 노 대통령을 싫어하고 깎아내리고 싶은 사람일지라도 몇 가지 그의 중요한 업적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첫째는 돈 안 드는 선거를 치러낸 것. 지난 총선처럼 깨끗한 선거는 한국 역사에 없었던 일이고, 그 공적은 누가 뭐라 해도 높이 평가받아 마땅한 값진 개혁의 성과였다. 한국의 청정도를 획기적으로 끌어 올렸다. 둘째로 권력기관의 힘빼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국가정보원과 검찰 등 권력기관들의 정치적 유착관계를 현저하게 청산시킨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큰 공로로 기록될 것이다. 노무현 특유의 근성이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셋째로 정부 행정의 디지털화 또한 훗날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다. 대통령 자신이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바람에 아날로그 장.차관들이 허덕대는 실정이다. 그만큼 정부 행정이 디지털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 밖에도 크고 작은 성공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한편 실패한 노무현-. 외교나 국방 등의 실패 여부는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일단 접어두자. 그러나 경제 쪽의 평가는 지금까지로서도 확실한 실패다. 경제성장률 7%를 큰소리 쳐놓고 2~3%에 머물고 있는 지금의 숫자들이 그의 실패를 말해주는 종합 점수다. 해온 것을 보면 그나마 마이너스 성장 아닌 게 다행이다. 노 대통령은 애당초부터 분배 평등을 앞세우는 개혁을 강조해 왔다.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성장이라면 차라리 그런 경제성장은 않겠다고까지 말했다. 기본적으로 그는 부자를 못마땅해했고, 노골적으로 강남 사람을 미워했다. 그리하여 징벌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에는 보복의 감정이 역력히 묻어나 있었다. 울퉁불퉁한 세상을 왕창 갈아엎어 평평하고 고른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의 꿈이었으니까.

아이러니한 것은 노 대통령이 경제를 그르치면서도 자신이 경제 문제에 통달해 있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확고한 개혁의지와 논리 앞에 누구도 감히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렵게 돼 있다. 경제도 그에겐 늘 개혁의 대상이었다.

직속 위원회에 힘을 실어준 것도 정부 조직과 관료조차 타파와 개혁의 대상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재벌들의 나쁜 버르장머리를 혼내주고 나라 운영의 틀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노조를 편들었고, 공정거래제도에 더 힘을 실어주었고, 양도소득세를 왕창 올렸고, 수도 옮기는 일에 정권의 운명까지 걸겠다고 열을 올렸던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빚어졌던 반(反)기업정서라든지, 투자심리 위축이라든지, 분열과 갈등의 심화라든지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러고도 투자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났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와서 대통령 스스로가 분열과 증오를 삭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국정운영 방식에도 결코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토론 좋아하는 대통령 스타일을 한껏 구사해 왔건만 폼만 잡았지, 별로 된 게 없다. 위원회 중심의 직할 체제는 최근의 행담도 해프닝 한 방에 박살이 나고 만 셈이다. 실패 사례를 죄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지금 이 마당에 그런 실패들을 까발려서 무슨 살풀이나 하자는 게 아니다. 기왕의 실패는 빨리 인정할수록 만회의 가능성을 높여주지 않겠는가 해서다. 레임덕이 빨리 온 게 득이 될 수도 있는데, 이는 오로지 대통령 하기에 달려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남은 2년반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잘 안 되겠지만 여전히 희망을 갖고 싶다.

이장규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