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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조직 내 화재 감정기관 설립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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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소방방재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4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화재건수는 3만2737건으로 하루 평균 90건이 발생했다. 사망.부상자는 2304명으로 하루 평균 6명꼴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서에서 진압은 물론 인명구조 활동과 함께 조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왜 불이 났으며 피해보상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등이 최대의 관심사다.

따라서 피해자에 대한 조속한 생활안정과 피해 복구를 돕고자 소방관서에서는 관계자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화재 원인을 규명해 화재 예방을 위한 정책적 통계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현장조사는 결국 최초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서가 최우선시 될 수밖에 없는 환경임에도 화재 발생의 진실을 규명하는 실마리가 되는 현장 수거물에 대한 신뢰성 있는 감정연구기관이 소방조직 내부에 없어 안타까운 실정이다.

화재 현장은 보통 진화과정에서 50% 이상의 물건이 불에 타거나 위치가 변동돼 급속하게 물리적.화학적 변화를 동반한다.

이에 비해 경찰이나 감정기관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시간상으로 많이 지난 상태여서 증거물의 물리적 특성변화가 되었거나 현장이 훼손된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조사 형태의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의 아픔으로 가중돼 소방은 고작 현장에서 당사자를 설득시키는 수준이다. 경찰은 일정한 절차에 의해 증거물을 채집한 뒤 감정기관에 의뢰하는 절차가 있기는 하나 감정기관의 업무량 폭주로 경찰서 회보까지는 보름 이상 소요된다.

현재 국가 기관 중 공신력 있는 국내 감정의뢰기관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가 있다. 그러나 행정자치부와 그 소속기관직제(대통령령) 및 국과수 예규에 발목이 묶여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이 의뢰하는 감정물에 국한해 감정업무를 하고 있다. 이런 제도적 미비점으로 소방에서는 국과수에 감정물을 의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난해 화재와 관련, 국과수에서 감정업무 처리한 것이 약 2200건으로 전체 화재의 6.7%에 해당한다. 나머지 3만537건(93.3%)의 화재는 어떻게 마무리지어진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장이 완전히 타 감정물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화재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져 감정 의뢰의 필요성이 불필요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 생활 안정을 위한 투명한 행정의 시각에서 볼 때 나머지 몫도 분명 누군가 담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의 경우 도쿄를 비롯, 오사카.나고야.요코하마.교토 등 소방본부를 중심으로 소방과학연구소나 화재분석센터가 설치돼 일선 소방서로부터 증거물을 의뢰받아 원인을 규명하는 감정업무와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소방서는 화재에 사회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기구로 화재 원인 조사에 대한 우선권을 부여받고 있다. 소방본부 산하에 분산된 연구소가 감정업무를 수행케 함으로써 현장에서 확보한 증거물에 대해 신속하고 원활하게 감정 조사가 이뤄진다.

미국의 경우 지방이나 연방 차원의 공공기관과 민간조직 분야 등 두 가지 형태로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여기서 사고 분석은 물론 화재사건에 대해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갖고 증거 수집 및 보존 등의 조사 업무를 수행한다.

최진만 한국방재학회 화재조사분석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