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 주말을] 'SF 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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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SF 철학
원제 The Philosopher at the
End of the Universe
마크 롤렌즈 지음, 조동섭.한선희 외 옮김
미디어 2.0, 284쪽, 9800원

"태어나자마자 물에 빠진다. 나는 수많은 여성의 태반 액체로 가득 찬 금속 자궁에서 나와 길을 잃는다. 이때 미치광이가 커다란 도끼로 죽이려 한다. 당신은 죽음 앞에 놓여있다. 어디에서 왔는지의 답을 풀기 위해 출생의 세부사항을 꿰맞추는 '빅터 프랑켄슈타인 일지' 기록이 시작된다." 영화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이 대사는 하이데거의 가장 기초적인 존재개념인 '현존 속에 내던져짐(Geworfenheit)'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소크라테스에서 니체에 이르는 존재론.인식론 등 철학 과제들을 11편의 영화로 풀어낸다. '매트릭스'로 가상세계에서 실존의 문제를 다루고, '마이너리티 리포트'로는 자유의지를 건드린다.

지은이는 자신의 철학을 설명할 적절한 비유를 찾지 못했다며 회의론의 대가인 철학자 데카르트를 야단치는가 하면 '매트릭스'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에겐 영상마술을 펼치며 철학을 실천했다는 찬사를 보낸다.

그럴만하다. 불과 40년 후에는 인간 뇌 콘텐츠의 다운로드가 가능해지고, 배아줄기세포로 뇌세포까지 모두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외계인.로봇.사이보그.괴물이란 이질적인 존재에서 자신을 직면한다. 이제 우리 모두는 사실상 네트워크화된 컴퓨터나 마찬가지다. SF영화는 철학연구에 적합한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지은이의 지적을 새겨들어야할 이유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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