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핵심은 못 밝히고 공무원만 잡은 검찰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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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 사건을 수사해 온 검찰이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을 내사중지한다는 내용의 중간 수사 결과를 어제 발표했다. 이 의원이 유전사업에 관여한 정황을 인정할 수 있지만 허문석씨의 해외 도피로 개입 정도나 구체적인 역할 등에 대한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철도공사가 유전사업에 뛰어든 배경에 외압이 작용했는지 여부다. 의혹의 중심에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는 이광재 의원과 '선생님'이라는 이기명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슨 연유인지 청와대 담당자들의 잇따른 보고 누락과 산업자원부 등의 협조 흔적이 드러나면서 의혹을 부풀렸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결과를 보면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은 청와대가 사전지시.기획에 의해 관여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선을 그었다. 허문석씨가 없다며 이 의원을 내사중지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왕영용 전 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은 허씨를 통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일정을 공식 발표 전에 파악했다고 진술했다. 허씨가 누구를 통해 그 같은 정보를 얻었는지 미지수다. 더구나 청와대 담당 행정관이 지난해 9월 당시 철도청 서울사무소를 방문해 유전사업에 대해 질문했다는 진술도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무관하다니 봐주기 수사란 말이 나온다.

이기명씨 부분도 마찬가지다. 그는 허씨와 6개월간 70여 차례 통화했고 허씨가 출국한 이후에도 두 차례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허씨의 출국 당일인 4월 4일 아침에도 통화했다. 그러나 검찰은 통화 내용이 "빨리 들어오라"는 것이었다는 이씨의 진술만을 토대로 그에게 면죄부를 줬다.

검찰은 허씨의 신병이 확보되는 대로 수사를 재개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의 귀국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에서 더 이상 검찰의 진상 규명을 기대하기 어렵다. 남은 의혹은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특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