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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트렌드] 꼭꼭 숨겨라 상표 보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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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볼까. 음, 파크 하얏트 서울 호텔 2층 레스토랑 어때?"

"그게 어딘데?"

"삼성역 1번 출구로 나와."

회사원 김경준(31)씨. 그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여자친구랑 만나기로 한 장소에 가 봤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파크 하얏트 서울 호텔이 없었던 것. 20여 분을 헤매다 다시 여자친구한테 전화해도 "지하철역에서 나오면 바로 옆 건물이야. 회색"이라는 대답뿐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특급 호텔이면 휘황찬란한 네온 사인이 달린 사인 보드는 있어야 당연한 것 아닌가. 김씨는 간신히 호텔을 찾곤 다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 글쎄, 간판이라곤 1층 구석에 보일 듯 말 듯 'Park Hyatt Seoul'이란 조그마한 문패 하나인데 그걸 어떻게 찾겠어요."

브랜드나 로고를 노출하지 않아 더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법. 이른바 '하이딩(Hiding) 마케팅'이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글=최민우 기자

간판 없는 호텔, 라벨 없는 정장 … 호기심 자극하는 '하이딩 마케팅'

알 사람은 이미 다 알아!

지난 4월 오픈한 파크 하얏트 서울은 로비가 1층이 아닌 24층 꼭대기에 있는 등 신개념 호텔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24층 외벽은 유리로만 이루어져 있고 호텔 이름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모르는 이는 "이게 도대체 무슨 유령 건물이야"란 느낌을 받기 십상이다. 이 호텔 마케팅팀 서은정씨의 말.

"아무리 예쁜 여성이라도 자신의 섹시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매력이 떨어지잖아요. 약간의 신비함과 은밀함을 고급 고객들은 더 좋아하시니까요. 어차피 비즈니스차 해외에서 오시는 바이어들이 주 타깃인데 그들은 간판이 안 걸려 있어도 다 알아서 찾아오시거든요."

패션 업계에선 이미 브랜드를 드러내지 않는 제품을 찾는 고객을 '노노스족(No Logo No Design)'이라 부르며 하이딩 마케팅을 선도해 왔다. 노노스족은 명품이란 브랜드보다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차별화되고 희소성 있는 제품을 구매하는 부류를 일컫는 말. 이에 따라 상표를 드러내지 않는 의류 상품이 오히려 더욱 명품처럼 보이는 현상마저 나타났다. 외국에선 간판 없이 작은 깃발에 브랜드의 이름을 새겨 넣어 특정 계층만 찾아올 수 있게끔 만든 매장을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라 부르는 등 드러내지 않는 마케팅 전략은 이미 일반화돼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수 위의 과시욕?

지난해 출시된 패션 디자이너 서상영씨의 남성복 안쪽엔 '서상영'이란 라벨이 없이 빈칸으로 돼 있다. "옷을 만들기까진 디자이너의 것이지만 옷이 팔린 뒤에 소비자 개인의 제품이란 의미를 담고 싶었다. 곧 그 빈칸의 주인은 구매자 자신이라는 뜻"이란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프랑스 정통 음식점 '라미티에'에는 간판은 물론 메뉴판도 없다. 큰길가가 아닌 꼬불꼬불 골목길 안쪽에 있어 정말 아는 사람이 아니고선 찾아올 수 없으며 예약제로만 운영된다. 서승호 사장은 "음식맛으로만 승부를 겨룬다는 생각에 따로 홍보를 하거나 광고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테리어 가구에서도 하이딩 마케팅은 소리 소문없이 전파되고 있다. 고급 침대와 붙박이장을 생산하고 있는 한샘 도무스 가구엔 어디에도 상표가 붙어있지 않다. 홍보실 김모래 대리는 "동양적인 신비함을 제품에 담기 위해선 군더더기가 없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가구점을 지나다 근사한 무상표 가구를 보곤 '아- 도무스'를 떠올리게끔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동덕여대 경영학과 김성환 교수의 분석은 이렇다. "예술에서도 화려한 양식이 한 시절을 풍미하고 나면 단순한 스타일에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듯 마케팅이나 디자인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 명품이 대중화되다 보니 이와 차별하고 싶은 사람들이 '무상표' 제품을 찾아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고 싶어한다. 오히려 더 고난도의 과시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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