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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화된 의료서비스 정부가 지원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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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우리나라도 여가와 건강, 그리고 웰빙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늘고 있다. 이 같은 관심은 식생활.주거 공간 등 기본적 삶의 조건 외에도 고급 의료서비스에 대한 요구로 자연스레 옮겨가고 있다. 국민총생산(GNP)이 올라가면서 그에 걸맞은 의료서비스를 원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할 권리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이러한 고급의료에 대한 기대는 공공의료를 중요시하는 보건당국의 정책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환자를 치료하는 입장에서 지금 내가 속한 외과를 예로 들겠다. 현재 외과 분야에서 복강경 수술은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서 해를 거듭할수록 확대.발전하고 있다. 복강경 수술의 장점은 개복 수술과 달리 배에 구멍을 뚫고 수술하기 때문에 환자의 통증이 작고 수술 후 회복이 빠르며 절개 부위가 거의 남지 않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복강경 수술에 소요되는 특수진료 재료와 장비를 산정 불가 품목으로 분류하고 있다(산정 불가 품목은 환자 치료에 사용되었더라도 환자에게 그 비용을 부담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과의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보험급여가 되지 않더라도 환자의 빠른 쾌유를 위해 복강경 수술을 강행하는 것이다. 이 경우 수술에 소요되는 소모품 비용 등은 보험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에게 청구할 수 없어 병원은 수술 소모품을 무상 공급할 수밖에 없다.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재정적 손해를 감수하고 복강경 시술을 시행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복강경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또 하나는, 손실이 너무 크다고 판단되는 경우 설사 외과의사가 원하더라도 복강경 수술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다. 비슷한 사정으로 외과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의사나 환자들이 원하는 진료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의료산업은 생명공학과 더불어 장래 우리의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 분야다. 우리와 비슷한 경제적 환경을 갖고 있는 싱가포르의 경우 일찍이 의료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의료의 고급화.차별화 전략으로 국민에게 양질의 진료를 제공, 많은 해외 환자를 유치하는 등 성공적 케이스로 남아 있다. 최근 의료보험 재정이 만성 적자에서 올해 처음 흑자로 돌아섰다고 한다. 정부는 이 돈으로 선심성 정책을 펼치려 한다는 보도가 들려온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이 원하는 고급 진료에 대해 눈을 돌려야 한다.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에 비해 이제 병원의 문턱도 많이 낮아졌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국민의 고급 진료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이제는 반도체.전자기기.자동차뿐만 아니라 의료 산업도 최고가 되는 것을 국민과 의료계는 절실히 원하고 있다. 이러한 토양을 보건당국이 만들어 국내 의료가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을 때 보다 좋은 의료를 찾아 국민이 인천공항을 떠나는 행렬도 멈추게 될 것이다.

한호성 분당서울대병원외과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