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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마을 북촌에 '작품 시연장' 꾸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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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 서울 북촌마을 재동의 한옥공방에 사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 1호 신중현씨(옻칠장)가 다기반상에 생칠을 하고 있다.

2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재동 33번지. 옻칠장 신중현(77)씨의 집 문은 열려있었다. 사랑채.안채가 단아하게 어우러진 한옥에는 은은한 옻냄새가 났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1호인 신씨는 "2400년간 고이 보존된 중국의 격관도 옻칠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장각도 옻칠각"이라며 옻칠 자랑을 시작했다.

1시간쯤 기다리니 작품이 나온다. 신씨는 "강원도 원주 심평면에서 골라온 옻나무는 까다롭기가 처녀 마음과 같다"며 "망사.섬유질 등으로 계속 걸러주며 여섯 번쯤 덧칠해야 비로소 매끈한 색이 나온다"라며 옻에 대한 흥겨운 대화를 그치지 않는다.

이날 저녁, 종로구 원서동 41번지. 11대째 활을 만들어온 궁장 권무석(61)씨의 공방이다. 권씨는 "활시위의 진동이 온몸에 전해지면 전신근육이 긴장을 하고 기순환도 좋아진다"며 활 예찬론을 펼친다. 하루종일 일해 얻는 품삯이 고작 쌀 한 되 값이었던 조선시대, 활은 쌀 세 가마에 맞바꾼 귀한 물건이었다. 권씨는 "귀한 물건인 만큼 아무 곳에서나 만들 수가 없다"며 "4 계절이 있고 통풍이 잘 되는 한옥에서만 작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가회동에서 사간동까지 형성된'살아있는 한옥마을'인 서울 북촌마을이 전통문화 복원의 구심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4년 초 서울시 무형문화재 네 명이 입주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통 다식.궁중음식.매듭.누비옷 등 25개 분야 공방들이 둥지를 틀었다. 이 공방들은 대부분 개방형 한옥이어서 손님들이 자유롭게 공방을 찾아 장인들과 만나 잊혀져 가는 전통문화의 숨은 의미를 도란도란 얘기하고 체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북촌 마을을 찾는 손님들이 늘고 있다. 그동안 경복궁 인근 소격동.팔판동 등 소위 삼청동 골목을 주로 이용해왔던 이고은(24.한동대 산업정보디자인학부)씨는 "요즘은 장인에게 민화를 배울 수 있는 등 색다른 문화환경이 있는 북촌을 찾는 횟수가 늘었다"고 말했다. 미술대학생들이 인간문화재의 제자로 들어오기도 한다. 오죽장 윤병훈씨는 이곳을 즐겨 찾던 미술대학생 박은아(28)씨 등을 최근 제자로 맞았다.

그러면서 이곳에 입주하려는 전통 공예인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서울시는 2001년부터 북촌의 보존을 위해 한옥 26채를 직접 매입하는 데 이어 계동에 '북촌문화센터'를 만들고 '전통공예 기능을 보유한 자'에 우선적으로 가옥을 임대하고 있다. 서울시 북촌문화센터 이종락 주임은 "서울시가 보유한 26개의 한옥 중 최근 보수를 마친 가옥은 입주 경쟁률이 3대 1에 이를 만큼 공예인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7월 윤보선 전 대통령 자택 뒤편 보수 한옥 자리에 '인간문화재 전수교육장'을 마련하고 시민을 위한 상설 시연장으로 꾸밀 예정이다. 또 '북촌 가꾸기 사업'으로 7월 북촌의 주요 도로와 골목길 2㎞를 역사.문화 탐방로(각 1시간 코스)로 단장해 관광에 활용할 방침이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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