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알만 하자 잊혀가는 모국어|최경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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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간혹 나 자신이 현재의 위치를 착각하거나 망각할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꼬집어 그 이유를 댈 수는 없으나 더없이 허전한 늪 속에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이란 나라가 후진국사람들에겐 선망의 대상이 된다지만 나의 조국 좁은 땅에 살 적보다 생각의 폭이 좁아지는 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나를 감싸기 때문일까.
어느 틈에 5년이란 세월이 흘러 어제는 남편과 함께 이민국엘 가서 미국시민권 신청서류를 접수하고 돌아왔다.
지난 76년12월 어린 세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혹한이 휩쓰는 이곳 낯선 땅에 떨어졌다. 이듬해 1월 큰놈과 둘째를 3학년과 1학년에 각각 입학등록을 끝내고 마치 유치원에 다니던 애를 대학에나 입학시킨 기분이 들어 안스러운 마음으로 며칠을 지내고 났더니 어느 날 큰놈이 침통한 표정으로 학교에서 돌아왔다.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억누르며
『왜, 무슨 일이 있었니? 아이들이 놀리던?』
다그쳐 물었으나 그러는 엄마의 모습이 오히려 안됐던지
『아니야, 엄마…』하며 어물어물 해 넘기는 9살짜리를 보며 『제발 인종차별을 느끼지 않고 티없이 자랄 수 있게 해주소서』하고 막연한 대상에 기도를 올린 적이 있었다. 미국에 오기 싫다는 나에게 『아이들을 위해 갑시다』하던 그이가 한없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지금 저 어린 동심이 받는 상처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게 할 것인가를 궁리한 끝에 얼핏 태권도를 머리에 떠올렸다. 코리아는 몰라도 「태권도」는 동양의 무서운 무술이란 것을 이곳사람들은 잘 아는 터였기 때문이다.
『정권아, 내일 학교에 가거든 놀리는 아이들에게 한국말로라도「너 까불면 없어」하고 이렇게 폼을 잡아보렴』하면서 언젠가 남편이 보여준 몇 가지 태권도동작을 흉내내 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우습기만 한 엄마의 동작을 눈을 반짝이면서 쳐다보는 녀석의 손을 감싸쥐며
『한국말은 잊어버려도 좋으니 빨리 영어를 배워 이곳 아이들보다 앞서 가거라』하던 그때 엄마로서의 마음은 다만 내 자식이 이겨야한다는 욕심뿐이었다. 그리고 세월은 흘렀다.
지금은 아이들이 엄마의 영어실력을 탓하면서 미국 아이들 못지 앓게 공부하는 모습은 대견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제 한숨을 돌리고 나니 다시 아쉬움이 온다.
잊어버린 모국어를 다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다.
88년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리게되고 한국이 세계속에서 꽃피게 되리라는 등의 화려한 기대 때문만은 아니다. 선진 이국 땅에서 이제 자리잡혀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결코 잊혀지지 않는, 그리고 언젠가는 돌아가 다시 살고싶은 내 핏줄들이 사는 고향 땅 한국은 어머니의 품속 같은 향수이고,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느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707 ECM St. Pella Iowa 50219 U. S.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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