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웰빙가에선] 건강정보의 홍수에서 살아남기

중앙일보

입력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하다’며 병원 외래를 찾은 30세 여자환자가 있었다. 물어보니 방송에서 “녹차에 살 빠지는 성분이 있다고 듣고선 체중을 줄이기 위해 물 대신 녹차 우린 물을 마시고, 다크초콜릿으로 저녁을 대신했다”고 했다. 평소에 커피를 입에만 대도 가슴이 뛰고 식은땀이 나며 잠이 안 와서 본인이 카페인에 민감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녹차나 초콜릿에도 카페인 성분이 있는 것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방송에선 “효과만 얘기했지 조심해야 할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불평했다.

이 환자의 경우, 그 두 가지 식품을 끊은 후 증상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면 의사인 나 조차도 ‘저건 또 무슨 방법이지?’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건강관련 정보가 쉴 새 없이 나온다. 요즘 화두가 ‘건강한 몸으로 오래 살자’이다 보니 건강에 대한 정보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을 듯한 근거가 부족한 얘기들이 마치 정설인양 방송시간 내내 토론의 주제가 되는 답답한 경우도 가끔 있다.

영양은 질병상태와 매우 관련이 깊다. 특정 영양성분이 질병예방이나 치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주제로 한 연구결과들이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지금 이 시간에도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가끔 내게 들어오는 방송 인터뷰 섭외의 상당수도 먹거리와 관련된 것들이다.

TV 채널을 돌려도 먹거리 관련 프로그램이 수두룩하다. 물론 이런 정보들 중엔 많은 사람들이 잘 몰랐다가 비로소 알게 되면서 질병도 예방하고 병의 진행도 막을 수 있는 귀한 것들이 더 많다. 트랜스지방이나 단순당과 같은 단어는 몇 년 전만 해도 전문가들이나 알던 생소한 단어들이지 않은가.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는 양질의 정보가 있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방송에서 특정 음식만 먹고 몇 년을 고생하던 지병이나 난치병을 고쳤다는 실제 사례자의 증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밑져봤자 본전인데 나도 한 번 해보자’란 생각이 들게 한다. 먹는 음식이나 약초 성분은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에 비해 해로움이 거의 없을 터이므로 일단 먹어보고 효과가 없으면 안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도 어설픈 건강정보로 인해 건강을 잃을 뻔한 사례를 종종 보게 된다.

당뇨병과 고지혈증으로 치료받던 60대 남성 환자가 언제부터인가 혈당조절이 안 되기 시작했다. 환자는 평소 하던 운동도 계속하고 약도 잘 챙겨먹고, 식사조절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대체 무슨 이유였을까? 이유가 궁금했던 나는 환자에게 식사일기를 써오게 했다. 유기농 시럽을 섞은 돌미나리 진액, 배즙, 계란노른자와 들기름 한 숟가락, 이 모든 것들이 하루 식사일기 내용에 다 들어 있었다. 환자는 나름 건강관리를 위해 방송에서 들은 몸에 좋다고 하는 것들을 다 챙겨 드시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게 문제가 될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을 다 끊고 난 후에 그 환자는 혈당을 잘 조절하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연예인들의 체험담을 통해 소문난 비법들도 한 번 되짚어 보자. 모 연예인이 소개한 오일풀링은 인도 고대의학에서 시행하던 민간요법으로 갖가지 효과가 있다고 소개됐다. 하지만 실상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았고, 미세한 기름방울이 폐로 넘어가서 오히려 폐렴을 일으켰다는 부작용 사례까지 있다. ‘해보니 좋더라’는 몇 명의 경험적 방법을 ‘아니면 말고’란 생각으로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다. 내 몸은 소중하니까.

박경희 한림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beloved9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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