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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의 '잘 헤어지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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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소녀시대 제시카의 탈퇴로 시끄러운 한 주였다. 강제 퇴출, 혹은 자발적 탈퇴를 놓고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 팬들도 당황했다.

 아이돌 그룹을 둘러싼 갈등은 처음이 아니다. ‘노예계약’, 멤버 불화 등이 이유다. 해체나 멤버 교체 등 내홍이 잇따랐다. 특히 2000년대 K팝 한류 개척의 대표 주자인 동방신기와 원더걸스는 가장 극적인 파국을 맞았다. 각각 일본과 미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공략한 선두 주자였다. 동방신기는 2인조 동방신기와 JYJ로 갈라섰고 원더걸스는 아예 해체됐다. 국내에선 톱스타였으나 해외에서 밑바닥부터 출발하는 과정이 만만찮은 후유증을 가져왔으리라 추측된다. 한류나 해외시장 개척이 과연 멤버들의 욕망이었는지 소속사의 욕망이었는지 정확히 알 길도 없다. 최근에는 제국의 아이들 멤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속사 사장을 비판했다가 하루 만에 화해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개봉 중인 ‘나인뮤지스-그녀들의 서바이벌’은 아이돌 세계의 이면을 보여주는 다큐다. 이학준 감독이 1년여 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혹독한 데뷔 과정을 담았다. “억울하면 떠. 그때 대우해줄게.” “예쁜 척 착한 척 머리 텅텅 비지 않은 척 하란 말야.” 소속사 관계자의 말에 멤버들은 “이거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조만간 탈퇴하려고요” “예능이든 뭐든 빨리 혼자라도 떠서 혼자 다닐 거예요”라고 답한다.

 극장판에는 없지만 BBC가 지난해 방영한 편집본에는 소속사 대표가 종이로 멤버의 뺨을 치는 장면이 담겨 논란이 됐다. 그러나 감독은 “맥락상 빰을 때렸다고 보기 힘들다”며 “아이돌과 소속사의 관계는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니다. 서로의 욕망을 위해 필요로 하는 관계”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이렇게 합치됐던 욕망이 어긋날 때 분쟁과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소녀시대 사태도 패션 사업, 결혼 등 멤버의 개인 활동과 팀 활동이 충돌하며 시작됐듯 말이다.

 최근 SNS에는 “일본에서는 ‘졸업’이란 방식으로 아이돌들을 좋게 내보내는데 아쉽다”는 글이 올라왔다. 어차피 언젠가 결별하는 것, ‘졸업’이란 방식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졸업 멤버를 위한 졸업 콘서트도 연다. 영원한 아이돌은 없는 법. 이제는 아이돌을 잘 키워내는 것 못지않게 잘 헤어지는 법도 고심해야 할 것 같다. 피를 나눈 가족인 양 정겹다가 하루아침에 원수가 되어 치고받는 모양새에 충격 받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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