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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우커, 서울에서 못 묵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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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
이규연 기자 중앙일보 탐사기획국장
이규연
논설위원

2일 오전 서울 명동 부근의 한 백화점. 출입구 앞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이 개점과 동시에 매장으로 몰려들어가 쇼핑을 시작한다. 화장품매장 주변은 쇼핑객이 뒤엉키고 뒤죽박죽돼 난장이 된다. 지갑을 여는 사람들은 중국 관광객, 바로 요우커(遊客)들이다. 중국 최대 연휴인 국경절이 시작된 1일부터 명동 일대는 요우커가 점령했다. 관광당국은 7일까지 한국을 찾는 요우커가 16만 명에 이른다는 예상치를 발표했다.

 화장품 매장도 그렇지만 요우커 특수를 누리는 곳은 서울 도심의 중급호텔이다. 보름 전부터 동이 났다. 백화점 매장에서 한 무리의 요우커를 만났다. 한국인 인솔자는 서울에 숙소를 잡을 수 없어 안산·부천·인천에 묵게 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서울의 숙박업소는 비싸고 화려한 특급호텔 아니면 싸고 낡은 모텔로 양극화한 상태”라며 “외국인이 선호하는 적절한 가격의 깨끗한 호텔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중급호텔 부족은 올해만의 문제는 아니다. 몇 년 전부터 비슷한 문제가 반복돼 왔다. 최근 8년 동안 외국관광객 규모는 2배로 커졌다. 반면 숙박시설 객실 수는 1.4배로만 늘었다. 서울을 찾는 관광객의 증가세는 전국평균보다 훨씬 빠르지만 중급호텔은 이를 따라잡지 못한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생기는 게 이치지만,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되풀이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최근 3년간 전국에서 91건의 호텔 건립 시도가 무산됐다. 이 중 76건이 서울에서다. 상당수가 중급호텔 신청이었다. 현행법에 따르면 학교 경계에서 200m 이내에는 학교 환경위생정화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숙박업소 신축이 가능하다. 교육환경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한 학교 정화위는 웬만하면 신축안을 부결시킨다. 물론 200m 밖에 세우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학교를 중심으로 200m를 그리고 나면 남은 땅이 별로 없다(그래픽 참조). 200m 밖은 도로·아파트·고층빌딩이 들어서 있거나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0m’ 족쇄를 푸는 법안(관광진흥법 개정안)을 일찌감치 국회에 내놓았다. 학교출입문에서 50m 이내는 신축을 전면 금지하되 50~200m 범위는 학교 정화위의 심의 없이도 허용해주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단체, 학부모단체의 반대에 부딪쳤다. 학교가 교육환경의 침해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우려를 감안해 국회 법안소위에서 주점 같은 청소년 유해시설이 없는, 그것도 모텔·여관 급이 아닌 100실 이상의 호텔만 허용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반대가 심해 국회 통과가 불투명한 상태다.

 한국 사회에서 숙박업은 오랫동안 퇴폐·불륜과 연관어였다. 계속 그런 눈으로 보면 아무리 비즈니스급이라지만 호텔은 교육의 ‘적’일 수 있다. 하지만 한 해 외국관광객 규모가 1000만 명을 넘어서고 2000만 명을 바라보는 서울에서 적절한 가격대의 깨끗한 호텔이 순조롭게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 바람직할까. 역사와 생활문화를 바탕으로 세계적 관광도시로 발돋움하려는 서울의 청사진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학습권의 가치를 무시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이 역시 선택의 문제다. 2014년 10월, 우리는 또 하나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