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444. '잔불' 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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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지난 식목일 강원도 양양에서 시작된 산불은 고찰 낙산사를 불태우고, 지역 주민들의 삶터까지 삼키고 말았다. 큰불을 끄고 난 뒤 '잔불'만 잘 정리했더라도 이런 큰 피해는 없었을 것이다.

잔불은 사전에 '꿩 따위 작은 짐승을 잡기 위해 쏘는, 화력이 약한 총알'로 나와 있다. 화력이 약한 총알로 작은 짐승을 잡는 일을 뜻하는 '잔불질'도 있다. 이 잔불의 반대말은 큰불(큰 짐승을 잡으려고 쏘는, 화력이 센 총알)이다.

총알이 아닌 불과 관련된 '잔불'은 아직 사전에 실려 있지 않다. '크게 일어난 불, 규모가 큰 화재'[大火]를 뜻하는 '큰불'도 있고, '타고 남은 불, 꺼져 가는 불'을 뜻하는 잔화(殘火)도 있지만 '잔불'은 없다.

대화보다 '큰불'이 많이 쓰이듯, 잔화보다 '잔불'이 훨씬 많이 쓰일 뿐만 아니라 더 명료한 말이다. "헬기에서 떨어진 물 폭탄이 불기둥을 잡자 진화대원들은 흩어진 잔불에 일제히 달려들었다"처럼 쓰인다.

'거스름돈, 잔금'을 뜻하는 잔돈[殘돈]도 사전에 있다. 큰 화재가 날 경우 자주 쓰는 '잔불'은 사전의 올림말로서 모자람이 없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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