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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우주왕복선에 실린 밀알은 지구 밖 ‘생명유지 장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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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호 25면

태양 전지패널로 전기 대신 포도당을 만드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2001년 12월 5일. 미국항공우주국(NASA) 우주선 발사센터에서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는 우주 왕복선 ‘엔데버’호에 특이한 물건이 하나 실렸다. 밀알이었다. 한 번 발사하는데 소요비용이 엄청나고 우주정거장에서의 연구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인데 왜 흔하디흔한 밀알을 싣고 갔을까? NASA가 실시한 연구는 바로 지구의 장래와 직결되는 것들이다. 쌈짓돈으로 주식투자라도 하려면 최소한 미래유망분야를 알아야 한다.

<29> 인공 광합성 시대

20년 전에 IT 주식을 못 샀던 아쉬움을 이번에 풀어 볼 수 있을까? 고교 시절엔 공부 잘하는 친구가 무슨 문제를 놓고 끙끙거리고 있는지 그의 노트를 살짝 들여다보는 것이 시험 잘 보는 비결이다. 기말시험에 나올 문제를 미리 아는 횡재를 할 수도 있어서다. NASA 연구원의 노트엔 ‘빛·식물·에너지’란 단어가 쓰여 있었다. 무슨 기술일까?

설악산과 내장산의 단풍이 다른 이유
10월의 설악산은 내장산과 컬러가 조금 다르다. 온통 붉은 내장산에 비해 설악산은 노랑·빨강·녹색이 뒤섞여 화가의 팔레트보다 색이 더 다채롭다. 낙엽이 지는 단풍나무(활엽수)와 녹색을 유지하는 소나무(침엽수)가 뒤섞여 있어서 설악산 천불동 계곡이 울긋불긋한 것이다. 날이 추워지고 물이 부족한 가을이 되면 나무는 곧 겨울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한다. 넓은 잎을 가진 활엽수는 스트레스에 적응하기 위해 생기는 식물호르몬인 ‘엡시스산(ABA, abscisic acid)’으로 신호를 보내 월동(越冬) 준비를 한다. 빛과 물을 이용한 ‘광합성’을 해서 여름 내내 나무를 먹여 살리던 잎은 이제 그 ‘공장 문’을 닫아야 한다.

잎의 공기구멍을 통해 겨울에도 물이 계속 증발한다면 물이 부족한 겨울에 나무는 말라 죽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활엽수가 잎과 줄기 사이를 땜질하면, 물 공급이 끊긴 잎 내부에선 광합성의 주역들인 엽록소가 하나 둘씩 죽음을 맞는다. 먼저 녹색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녹색이 사라진다. 남아있던 안토시아닌의 붉은 색이 비로소 나타난다. 그동안 다수의 녹색에 가려져 있던 이 색소가 마지막 순간에 ’나 여기 있었소!‘라고 하면서 산을 붉게 물들인다. 10월에 볼 수 있는 이 붉은 색소도 11월이 되면 사라진다. 그러면 원래 골격인 리그닌 성분 때문에 잎은 갈색을 마지막으로 땅에 떨어진다.

불교에선 큰 스님이 입적하면 불로 모든 것을 사르는 ‘다비식(茶毘式)’을 한다. 다시 맞을 봄을 기약하며 붉게 물들었다 떨어지는 낙엽과 윤회의 새로운 삶을 위해 몸을 태우는 불교의 다비식은 모두 내일의 탄생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긴 겨울을 지나서 기온이 오르고 태양이 강해지는 봄이 되면 식물은 사이토카인 성장호르몬을 만들어서 겨우내 잠자고 있던 세포들을 깨운다. 땅속에서 겨울을 버티면서 극소량의 물을 나무에 공급하던 뿌리도 다시 활발하게 펌프질을 한다. 새롭게 잎을 만들어 ‘광합성 공장’을 다시 돌리기 시작한다.

광합성은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신의 선물이다. 일러스트 박정주

지구를 떠받치는 식물의 광합성
식물의 잎엔 수백만 개의 ‘초미세 광합성 공장’이 점점이 박혀있다. 하나의 공장은 두 개의 모듈(module)로 나뉜다. 첫째 모듈엔 빛의 광자에너지를 잡는 안테나 같은 녹색 엽록소 분자가 있다. 이 분자는 아주 약한 단백질로 구성돼 있지만 ‘도끼’처럼 강력하다. 빛의 에너지를 잡아채서 도끼로 내리치듯 한방에 물(H2O)을 쪼갠다. 이 ‘도끼질’로 만들어진 산소(O2)덕분에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다. 둘째 모듈에선 ‘도끼질’로 튕겨 나온 고(高)에너지의 전자로 수소(H)와 공기 속의 이산화탄소(CO2)를 합쳐서 포도당(C6H12O6), 즉 쌀·사과 같은 곡식을 만든다.

1772년 영국의 생물학자 프레스텔리는 유리 용기에 쥐를 넣고 밀봉하면 쥐가 질식해 죽지만, 밀폐된 유리 용기에 식물을 함께 넣으면 산소 덕분에 산다는 원리, 즉 광합성을 증명했다. 수억 년 전부터 식물은 산소와 곡식을 만들어 지금까지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인간들의 욕심 탓에 지구는 서서히 녹초가 돼 더워지고 있다. NASA는 이 난제를 풀기 위해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우주 정거장에서 무엇을 해보려고 평당 수십억 원인 우주선에 밀 씨앗을 싣고 갔을까?

우주 비행에선 무게가 돈이다. 장시간의 여행에 쓸 산소를 모두 싣고 가기보다 산소를 스스로 만들면 어떨까? 우주 정거장에 장기 체류하거나 미래에 달·화성 등에 사람이 거주할 때 산소는 어떻게 공급할까?

답은 아파트 거실에 있다. 필자의 아파트는 이중 창문으로 완전 밀폐가 가능하다. 만일 집안 전체가 모두 완전 밀폐돼 외부와의 공기 출입이 불가능하다면 죽지 않고 어떻게 몇 십 년을 살아남을까?

장기 생존을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은 창 옆에 식물, 예를 들면 콩이 자라도록 하는 것이다. 콩은 햇볕을 이용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물을 산소와 포도당(콩)으로 만들어 준다. 이렇게 되면 완전 밀폐돼도 살아남을 수 있다. NASA 연구원도 우주정거장 내에서 외부 공급 없이 스스로 숨을 쉬고 살 수 있는 ‘폐쇄 생명유지 장치’를 만들기 위해 밀알을 우주선에 실은 것이다.

인공 광합성으로 청정에너지 제조
우주 정거장의 내부처럼 지구도 밀폐된 공간이다.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사람·공장 굴뚝·자동차가 내뱉는 이산화탄소를 식물이 모두 흡수해 다시 산소로 변환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조금씩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져 태양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고 지구가 더워지는 ‘지구 온실-온난화’ 현상이 심화된다. 점점 더워져 남극의 얼음마저 모두 녹아 지구에 큰 재앙이 닥치기 전에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식물의 광합성 원리를 모방해 태양열을 잡아채는 ‘인공 광합성’을 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필자의 지인은 자신의 집에 친구들을 부른 뒤 꼭 옥상으로 데려간다. 그 집 옥상엔 탁구대 5개 크기의 태양 전지 패널이 설치돼 있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전기를 집에서 사용한 뒤 남은 것은 한국전력에 파는데 그 수익이 쏠쏠하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전기는 저장·운반이 어렵다. 빛의 에너지를 이용해서 수소가스를 만들면 어떨까? 수소가스를 액화시키면 저장·운반하기 쉬워진다. 또 수소가스는 태우면 이산화탄소 대신 물이 생기는 무공해 청정연료다. 이미 수소로 발전해 움직이는 수소-전기자동차가 상용화됐다.

하지만 현재 수소는 땅 속의 원유를 분해해 만들므로 지구의 원유 고갈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된다. 광합성을 이용해 수소를 만들 수 있을까? 수소는 물을 전기분해하면 생긴다. 전기는 광합성의 첫 모듈에서 만들 수 있다. 잎의 광합성에 사용되는 색소 대신 반도체 물질 등을 이용해 잎의 광합성을 모방하는 ‘인공 광합성’이 미래기술로 뜨고 있다. 그 첫 단추인 ‘빛 에너지 잡아채기’ 기술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 올 8월 저명 학술지인 ‘네이처 매터리얼(Nature Materials)’엔 나뭇잎 속에 초미세(超微細) 나노카본튜브(nano carbon tube)를 삽입해 전기 발생속도를 3배나 증가시킨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또 독일 연구팀은 새로운 금속 복합체를 이용하면 잎의 광합성이나 지금의 태양 전지 패널보다 6.5배나 빨리 빛을 잡아챌 수 있다고 밝혔다.

식물의 잎은 인간의 기술보다 몇 수 위
인간이 신의 창조물인 잎의 성능을 앞선 것일까? 그렇진 않다. 잎은 인간보다 몇 단계 고수다. 빛을 잡을 때도 무리하는 법이 없고 느긋하다. 잎으로 쏟아지는 태양 광자의 10%도 채 잡지 않는다. 특히 녹색 빛을 잡지 않고 반사하기 때문에 잎이 녹색으로 보인다. 잎은 태양의 열선(熱線)인 적외선도 잡지 않는다.

왜 식물은 빛을 몽땅 잡아서 사용하지 않을까? 식물은 굳이 힘들여 빛에너지를 100% 잡지 않아도 충분한 양의 포도당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자신들이 생존하고 자자손손 이어가는 데는 지금 상태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오히려 빛을 100% 다 잡는다면 열로 인해 잎이 타 버릴 것이다.

연구자들이 잎으로부터 진짜 배우고 싶은 것은 잡아챈 빛에너지를 사용해 이산화탄소를 포도당으로 만드는 두 번째 모듈 기술이다. 그래야만 지구의 이산화탄소가 줄어들고 재순환되기 때문이다. 인공 광합성의 첫 모듈은 ‘도끼질’ 한 번의 간단한 반응인 반면 둘째 모듈에선 고난도의 연속 합성 반응이 일어난다. 정교함이 요구되는 20단계를 거쳐야 포도당이 만들어진다.

빛의 광합성 분자를 모방해 첫 번째 모듈인 빛에너지 잡아채기를 성공해 탄력을 받은 과학자들은 요즘 두 번째 과제에 도전하고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긴 하지만 간단한 유기물인 포름산·메탄올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비록 생산 효율이 식물 광합성의 20%에 머물러 있지만 과학자들이 확실하게 믿고 있는 구석은 따로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박찬범 박사는 “식물의 광합성은 수억 년 동안 진화해온 보배로 여기에 답이 있다” 고 말한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나뭇잎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이유다.

감귤은 제주에서 나주로, 사과는 상주에서 평창으로 재배지가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 한국이 아열대 지역으로 급변하고 있는 증거란 해석도 나온다. 지구촌의 지구 온난화·원유고갈은 이제 시간문제다.

확실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하느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성경의 처음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의 첫 번째 프로젝트가 지구에 햇빛을 비추는 일이었다. 이후 식물을 만들어 에덴동산에 모든 것을 세팅하고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란 유혹을 준다. 원죄를 짓고 쫓겨난 인간이 반항이라도 하듯이 지구를 망쳐놓는다. 하느님은 ‘빛’이란 열쇠를 다시 준다. 과학자들이 ‘빛-인공 광합성’의 열쇠를 갖고 에너지 위기를 풀기 전까지 우리는 먼저 낙엽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스스로 팔을 자르는 낙엽처럼 우리도 에너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

한 겨울에도 반팔 차림으로 지내는 아파트, 문을 열고 에어컨을 돌리는 건물들, 이곳 주인들은 모두 설악산에 가서 직접 봐야 한다, ‘식물의 다비식’인 불타는 가을 단풍을.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 테크놀러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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