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이란은 설득 … 북한은 무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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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이란과 북한을 다르게 대접했다. 북한과 이란 모두 핵 개발에 뛰어들며 국제 사회의 문제아가 되고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을 향해선 공개 설득한 반면 북한은 무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미국은 핵 무기의 확산을 막고 평화를 추진하기 위해 이란 핵 문제를 놓고 외교적 해결을 찾고 있다”며 “이란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세계에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평화적이라는 점을 알리면서도 이란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도 밝혔다.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태평양으로 주제를 바꿔 “국제법에 따라 영유권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며 중국을 우회적으로 거론했다.

하지만 핵 무기의 개발에서 이란보다 훨씬 앞선 북한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미국 등 6개국은 이란을 상대로 1만9000여개의 원심분리기를 대폭 줄이도록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북한은 원심분리기에서 고농축 우라늄을 추출하는 단계를 훨씬 지나 핵 실험을 세 차례나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상이한 이란ㆍ북한 접근법엔 발등의 불인 이슬람반군(IS) 문제가 작동했다는 해석이 워싱턴 외교가에서 나온다. 한 소식통은 “이란과 북한 모두 ‘악의 축’이었지만, IS가 최우선 현안으로 등장한 뒤 미국으로선 물밑에서 적(IS)의 적인 이란을 끌어들여야 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유엔 총회장 바깥에서도 이란과 북한의 처지가 다르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지난 21일 뉴욕에서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을 만나 IS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장관의 단독 면담에 이어 미 국무부 인사들이 함께 참석한 확대 면담까지 이뤄졌다. 이에 앞서 케리 장관은 “IS에 맞서려면 대부분의 세계 나라들이 할 역할이 있고 이란도 그렇다”며 이란에 신호를 보냈다. 반면 북한에는 인권으로 압박했다. 이란 외무장관을 만난 이틀 후인 23일 케리 장관은 유엔총회 기간 중 처음으로 북한 인권을 다루는 별도의 장관급 행사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사악한 시스템”이라고 비난했다.

일각에선 북한의 인질 외교에 대한 미국의 불쾌감이 유엔 총회장에선 북한 무시로, 바깥에선 북한 압박으로 나타난다는 지적도 있다. 미 국무부는 북한이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을 석방시키기 위해 특사 방북을 잇따라 제의했지만 북한은 최고위급 특사를 요구하며 응하지 않았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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