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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만 따지며 국민 안전 외면한 기상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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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강찬수
사회부문 기자

제16호 태풍 ‘풍웡(鳳凰·FUNG-WONG)’의 영향을 받은 23~24일 제주도 한라산의 진달래밭과 윗세오름 등에는 500~600㎜의 폭우가 쏟아졌다. 밤 사이에는 초속 20m가 넘는 강풍도 몰아쳤다. 제주도 바닷가 모슬포에서는 24일 아침 순간풍속이 초속 27.4m까지 기록됐다.

 24일 낮까지 제주도와 목포·군산 등지에는 순간풍속 초속 20m가 넘는 ‘태풍급’ 비바람이 몰아쳤다. 제주를 오가는 항공편 승객들이나 남해안 어민들은 태풍 ‘풍웡’의 진로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상청은 23일 오후 6시 풍웡이 중국 상하이 앞바다에서 열대저압부(TD·중심 부근 최대풍속이 초속 17m 미만)로 약화됐다며 이날 오후 7시를 마지막으로 태풍 정보 제공을 종료했다. 태풍이 아닌 열대저압부에 대해서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기상청 규정에 따라서다. 이런 탓에 밤 사이 태풍급 비바람이 어디로 향하는지 국민은 깜깜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중국과 일본 기상청은 다음날 오전까지도 ‘풍웡’이 태풍으로서의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예보를 계속 내놓았다. 일본 기상청은 24일 오전 9시에 ‘풍웡’이 제주도 서쪽 해상에서 열대저압부로 약화됐다고 발표할 때까지 한국 기상청보다 14시간이나 더 정보를 제공했다. 중국 기상청과 홍콩 기상청은 태풍이 열대저압부로 약화된 이후 한국 남해안으로 상륙할 것이라는 예보를 오전 11시까지 계속 내놓았다. 한국 기상청과 마찬가지로 23일 저녁 열대저압부로 약화됐다고 판단한 미국의 합동태풍경보센터(JTWC)도 열대저압부 예상 진로도를 계속 제공했다.

 열대저압부라고 해서 피해 우려가 없는 게 아니다. 분석 자료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유독 한국 기상청만 정보 제공에 인색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태풍이 열대저압부로 약화되면 중심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 열대저압부에서 부는 수준의 강풍은 평소에도 아주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상청의 예보 탓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도 바람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다. 24일 새벽 중대본이 비상근무에 들어가긴 했지만 호우주의보 때문이었다.

 태풍 전문가인 제주대 문일주 교수는 “열대저압부로 바뀌더라도 경우에 따라 (태풍보다) 바람이 더 강해질 때도 있다”며 “열대저압부에 대해 정보도 제공하는 걸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호된 지적이 잇따르자 기상청도 뒤늦게 “태풍 정보 규정을 개정하는 방안을 논의해보겠다”고 밝혔다.

 국민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초속 1~2m 차이로 태풍이냐 아니냐를 따지고, 규정에만 매달리기보다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상청의 모습이 아닐까.

강찬수 사회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