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정 'LCD 글래스 커팅머신' 중국·대만에 유출한 일당 검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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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첨단기술로 고시한 ‘액정화면(LCD) 및 아몰레드(AMOLED) 절단ㆍ가공 기술’을 중국과 대만의 경쟁업체에 유출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유출된 기술이 적용된 ‘레이저 글래스 커팅 머신(Laser Glass Cutting Machine)’은 국내 코스닥 상장회사인 A사가 2010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으며 해외에서는 아직 개발 중이다. LCD나 AMOLED 제조 과정에서 별도의 뒷처리 없이 액정화면을 깔끔히 절단해 낼 수 있어 지난해 10월 첨단기술로 고시됐다.

경기경찰청 국죄범죄수사대는 23일 이 같은 기술을 해외로 유출한 혐의(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김모(45)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빼돌린 기술로 테스트 장비를 제작한 B사도 입건했다.

김씨는 ‘글래스 커팅 머신’ 제작 기술을 보유한 A사에서 2002년부터 2011년까지 근무했다. 기술이사를 맡았던 김씨는 A사가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총 56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기술의 핵심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김씨는 “맡은 일에 비해 급여가 적다”며 처우에 불만을 품고 2011년 3월 국내 경쟁업체인 B사로 이직했다. A사는 중책을 맡았던 김씨에게 ‘기술유출 방지 및 보안 각서’를 받았다. “그동안 수고했다”며 ‘보안 유지비’로 3000여만원을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A사에서 함께 일하던 부하 직원 박모(40)씨와 구모(34)씨까지 B사로 끌어들였다. 김씨는 빼내온 기술을 이용해 이들과 함께 비슷한 기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A사와 거래하던 중국의 한 업체에는 “같은 성능을 가진 기계를 만들 수 있으니 우리와 거래하자”는 제안서를 세 차례에 걸쳐 보냈다. 이 제안서에는 A사 커팅 머신의 설계도면 일부와 성능결과서(대외비)가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가 A사에 근무하던 장모(40)씨로부터 이메일을 통해 받은 것이었다.

김씨는 대만의 한 동종 업체에도 커팅 머신을 제작할 수 있는 자동화 시스템에 대한 홍보자료를 보내며 "거래 기업을 찾아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김씨의 기술 유출 행각은 지난해 꼬리가 밟혔다. 김씨가 접촉한 중국 업체로부터 소문을 들은 A사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다.

결국 B사의 거래는 성사되지 못했다. 김씨는 빼내온 기술을 이용해 A사와 비슷한 성능을 가진 커팅 머신을 만드는 데도 실패했다. 노주영 경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장은 "처우에 불만을 품은 내부자의 기술 유출이 갈수록 늘고 있다"며 "국가고시 첨단기술의 경우 해당기업에만 관리를 맡기지 말고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관리·점검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호진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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