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무원도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직무에 충실하여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다 쓰러진 세 공무원의 이야기는 이 살벌한 염량세태중에 한가닥 청풍같이 신선한 감개를 일으킨다.
어제 중앙일보에 보도된대로 두 사람은 통신시설 점검 임무를 띠고 산속을 답사하다 눈속에 파묻혀 목숨을 잃은 체신공무원이요, 다른 한 사람은 근로자들의 권익을 위해 일하다 과로로 사무실에서 졸도한 근로감독관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듣는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며 또 한편으로 엄숙하게 하는바가 있다. 그건 과연 어디서 오는 감동일까.
우선 이들이 오늘과 같은 삭막한 시대에 평범한 공무원으로서 그들의 맡은바 직무에 충실하여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우리의 감동의 근원을 발견할수 있다.
물론 공무원이 이 물가고와 불황의 시대에 박봉이나마 백성의 혈세를 받으며 백성의 심부름을 하는 직책에서 자기본분을 다해야함은 당연한 일이겠으나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 공무원들이 부정부패에 물들고 회뇌와 권력에 침윤함을 걱정하는 국민들로서는 실로 이번 세 공무원이 행적이 유별한 감개를 느끼게 하는 점이 있다.
특히 이들이 모두 공직 가운데도 외면적으로 공적이 두드러지는 부서에 일하지도 않았으며 또 이른바 「좋은 자리」나 이권과 관련된 직책에 있지 않았으면서도 20여년의 길고긴 공직을 감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옷깃을 여미게하는 바가있다.
이는 이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수분을 알며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왔다는 엄연한 증거로써 작은 이익을 따라 철새처럼 배회하기 일쑤인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는 바가 있다.
반드시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책무와 의무를 알며 거기에 충실하여 묵묵히 정진하는 이들의 성실한 삶에 우리는 가끔 충격과 감사를 느끼곤 하다.
특히 남이 알아주지도 않고, 또 수익이 많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별달리 자신의 취향에 맞아서 하는 일도 아닌데도 묵묵히 자신의 의로운 직분을 성심껏 수행하는 이들의 「위대성」을 우리는 때로 절감할 때가 있다.
반드시 대단한 자리에 올라앉아서 외면적으로 커다란 일을 해내야 위대한 것만은 아니다.
사회의 발전이나 인간적 가치의 참되 의미를 밝히며 높이는 일은 진실로 이처럼 묵묵한 가운데 성실하게 소임을 처리하며 결코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두드러지지 않는 「위대한」일꾼들이 있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의 위대성은 멸사봉공하는 투철한 공복의 정신에도 있겠거니와 그보다는 그들이 진실하게 또 성실하게 인생을 살아왔다는 점에서 찾아져야겠다.
그것은 특히 근로감독관 김재무씨의 경우처럼 우리사회소외계층의 절망과 좌절을 모소 해결하려 밤과 낮을 지새는 인간애와 희생정신에서 더욱 아름답게 아로새겨진다.
노사분쟁의 현장에서 그는 중재의 명수가 되었고 문을 닫아버린 사업체를 찾아선 근로자들의 임금과 퇴직금을 받아내는데 앞장 섰다고 한다.
심한 경우엔 달아난 기업주 대신 자신의 봉급을 털어 어려운 근로자들에게 나눠주었다고도 한다.
어느 의미에서 그는 오늘의 종교인들이 방치하고 혹은 외면하는 사회구원의 종교적 사명을 실천하는 대사로서 살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행동에선 오늘의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나 상업적 경건주의자들이 미치지못할 숭고한 소명의식을 발견할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한 공무원이 말단행정의 현장에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며 인간존엄의 구현을 위해 자신의 몸은 내던졌다는 사실에 커다란 감격을 느끼게 된다.
이는 마땅히 우리사회의 귀감이요 희망이 되어야한다.
아울러 눈속에 묻혀 산속에서 타계한 두 체신공무원의 명복을 빌며 병상의 근로감독관 김씨의 쾌유를 비는 바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