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택시 운전사와 푸줏간 주인의 넋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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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좌석버스를 타려고 정류강에 갔다. 시내버스와 택시도 서는 곳이어서 외출차림의 사람들이 무더기로 모여 있었다. 출근시간이 지난 때여서 그런지 빈 택시가 서너대나 서있고 운전사가 고개를 내밀고 손님을 찾았다. 나는 그 운전사들과 눈길이 마추질까봐 혼자서 조바심치며 버스를 타고 가리라 결심했다.
그 때 콜택시 한 대가 유연하게 달려와 사람들 앞에 멎었다. 내가 살고있는 개발되지 못한 변두리 정류장에 그 콜택시는 마치 소작인들 속에 끼어든 도회지의 지주처럼 낯설고 겉도는 느낌을 주었다.
『어디까지 가세요?』
유리를 내린 참 구멍으로 고개를 내밀고 운전사가 말했다. 나는 그가 누구에게 말을 건넨건지 몰라서 멀거니 서 있었다. 그러나 곧 그 대상이 나라는 걸 깨닫고는 너무너무 당황해서 낯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내 차림새가 남다른가, 돈푼이나 있게 보이는가, 꼬닥거리면 후딱 념어가게끔 보이는가, 나는 순식간에 수치심의 급소를 깔린 듯이 절절 맸다.
그가 다시 한번 행선지를 물었고 나는 시청 앞까지 가지만 콜택시는 안타겠다고 비굴하고 건방진, 일관성 없는 감정 표현을 하느라 애먹었다. 그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택시 요금만 받겠다고 했다.
미터요금의 절반이 꼭 택시요금과 같다는 것이었다. 급소를 찔린 수치심은 점점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했고 나는 오로지 타인들 때문에 콜택시를 타고 말았다. 그리고 미터기와 내가 가진 헌금과 운전사의 양심 등등을 따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체면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콜택시가 갈 안되나 보죠?』 내가 날카로운 지식인(!)처럼 말했다.
『완전히 실패지요!』
갑자기 그가 소리쳤다. 필경 그는 <잘 안된다>는 사실에 오래도록 속이 메어있었으리라. 나는 그가 콜택시를 어렵게 타고 끝없이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겁주지 앉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안전벨트는 도대체 어떻게 된거예요?』
맘이 편해진 내가 이죽거리듯 말했다.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눈치로 그가 나보다 훨씬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나의 불평이 감정적이라면 그의 화는 생존에 뿌리를 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서소문에서 내렸다. 미터요금의 절반 금액은 나룰 또다시 부끄럽게 만들었다.
시청 무근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우리 동네 시장 안의 정육점에 들렀다. 한낮이긴 해도 불을 켜야하는데, 낯익은 주인 남자가 어둑신한 가계 안에 볼부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는 인사하는 내게 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삼결살 좋은 거 있어요?』 『있긴 있지만 값이 좀 비쌈니다.』
그는 말끝을 내려끌며 지리한 몸짓으로 일어섰다.
『이 일도 다해 먹었어요. 사람봐가며 물건을 팔아야하니. 그래 장사꾼이 이남기자는 장산데 왜 물건을 안 팔겠습니까.』
당국의 가격 발표와 실제가격이 다르다고 주부들이 따진다는 것이고, 그러니 제살 깎아주며 장사는 못하겠다는 젓이었다. 내 불평 잘하는 기세가 그의 <쓴 하소연>에 기가 꺾였다. 그저 입다물 수 없어 <당국>이라는데를 막연히 욕해주고 고시가격보다 몇백원 더준 삼겹살을 사들고 돌아왔다.
미터요금의 절반을 받으면서 승객에게 구걸하는 운전사의 <화>와, 정육점 주인의 <울화통>이 내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그리고 답답증이 천천히 두려움으로 변해 갔다.
그들의 그것을 솔직하게 풀어주지 않으면 안되리라는 어떤 필연성이 나를 그렇게 두렵게 하는 것이리라.
◇약력 ▲48년 강원도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73년 서울신문신춘문예소설 『학인』당선 ▲장편소실『봄의 마지막 날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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