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구종말론」왜 많이 읽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지구의 종말」은 과연 다가오고 있는가. 1999년 지구는 파멸한다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들이 한차례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16세기 유대계 프랑스인으로서 『모든 세기』란 제목의 기괴한 예언시집을 쓴 장본인. 최근 그의 예언시를 토대로한 갖가지 번역서(번역서)들이 국내 4개 출판사에서 경쟁적으로 출판되었는데 K사의 경우 출판4개월만에 8판을 거듭하는 재미를 보고있는 정도. 종로서적 유동용씨는 『지구의 종말이나 예언을 다룬 책들은 최근 통틀어 13종이나 나왔다』고 밝히고 독자층도 고등학생에서부터 대학생, 일반 사회인이 이르기까지 광범하다고 설명한다.
M고교 1학년 이도준군은 5개월전에 읽었던 그때를 회상하며 『단순한 흥미로 읽었지만 나에겐 잠을 설칠 정도로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부끄러움이 없는 착실한 삶을 준비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이다.
같은 학교 1학년 김한석군은 『지금도 소름이 오싹 끼친다』며 『이런 책을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노스트라다무스」가 적중하지 못한 확률 2%는 무슨 뜻인가? 그것은 인류가 그의 예언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이 예언서의 내용에 상당한 신뢰감을 표시한다.
같은 학교 1학년 조도상군은 『현재의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이 암흑같이 어두운 종말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은 지금의 나로서는 감당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어려운 문제였다』고 한다. 같은 학교 1학년 정영오군은 『연약한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여 토정비결 같은 얘기를 만들어내어 돈을 벌려는 풍토가 나쁘다』고 비판한다.

<학생에 부정적 영향도>
고교생들의 이러한 독서경향에 대해 M고교 국어교사 정인뢰씨는 『이러한 책을 학생들이 읽고 있는지 실제로 몇개반을 조사해보니 학급당 5∼6명이나 나와 놀랐다』면서 『이러한 예언서들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자기확신과 새로운 세계를 찾으려는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기는 하겠지만 교육적으로 부정적인 영향도 적지 않다』며 우려를 표한다.
한편 K고교 교사이면서 소설가인 전상동씨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를 자신도 읽었다면서 『읽는 동안 상당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유의 독서가 『현실에 얽매인 테두리를 벗어나 안일한 생각을 흔들어주며 말세론적 현상을 확인시켜줌으로써 미래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경고로 받아들이는데서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현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인간이란 영원한 존재이며 영원히 살 것이란 오만에서 벗어나 인간의 유한성과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게 하는 겸허함』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독자들의 반응은 나이층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보이지만 유형은 비슷하다. S여대 1학년 이명숙양은 『내용을 보니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면서 내용의 신뢰도에 수긍을 보였다.
J대 2학년 김인석군은 『이러한 종말론은 역사상 항상 존재했던 것』이라고 말하고 이러한 예언서들이 크게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방황하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한편 회사원 박중길씨(31)는 이 책을 읽고 『며칠동안 입맛이 없었다』면서, 그러나 오랫동안 입맛이 없을 만큼 한가한 생활을 할 입장은 못된다며 웃는다.
그는 이러한 책들을 자라나는 세대가 읽으면 그 내용을 맹신할 가능성이 크고 현대문명에 큰 회의를 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걱정했다. 크리스천인 가정주부 민령아씨(40·서울 신림동)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정확한 예지력에도 놀랐지만 더욱 놀란 것은 성경의 예언과 일치하는 대목이 많다는 점』이었다고 색다른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이러한 「지구의 종말론」에 대해 과학자들은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가.
김정흠교수(고대·물리학)는 「노스트라다무스」류의 예언서들이 주장하는 「지구 종말론」은 한마디로 『근거 없다』고 일축한다.
그는 이러한 예언서들이 그 신빙성을 가장하기 위해 현대 물리학의 지식을 마구 동원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는 『현대의 문명을 이룩한 인류는 항상 파멸의 가능성을 안고 하루하루를 지탱해 가지만 그들은 위를 맞을 때마다,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도 현명하게 잘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래에 대한 관심에서>
조경철교수(경희대·천문학)도 『이런 류의 예언을 믿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는 『인위적인 사건들이 인류의 파멸을 초래할 만큼 인간이 어리셔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그러나 천문학적으로 볼 때 가까운 미래, 즉 ⓛ1982년의 주기적인 화산·지진에 의한 피해(1백79년마다 모든 행성이 추분점과 동지점 사이에 모임) ②1986년의 할레이(Halley)혜성의 접근에 의한 가뭄·냉한의 피해 ③2000년의 주기적인 화산·지진의 피해(항성직렬)등은 국지적일 것이나 미리 대비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부단히 관심을 갖는다. 최근의 이러한 독서경향도 그 관심의 집약된 한 현상일 것이다. 문제는 고조되는 관심 속에서 퍼져가는 「지구 종말론」의 내용과 그 영향력이 아닐까. 「지구종말론」은 과연 현대문명의 위기가 낳은 세속화된 하나의 종교인가, 아니면 현대문명의 안락이 낳은 오컬트(occult)붐의 한 현장인가.
김인회교수(연세대·교육학)는 『우리는 항상 죽음과 삶을 나란히 의식하는 생활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교육이라는 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라면 결과적으로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별개로 생각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동양사상엔 없는 발상>
박봉랑교수(한신대·신학)는 『기독교의 종말사상은 기본적으로 희망론에 기초한 것』이라고 말하고 따라서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지기 쉬운 세속적인 종말론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한편 한상범교수(동국대·법학)는 『현대의 종말론은 종교적인 요소와 문명론적(세속적)인 요소가 혼합된 새로운 양태를 보인다』고 지적하고 『인간의 주체적인 의지로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면이 강한 동양사상에선 종말론적 발상을 찾을 수 없다』고 덧붙인다.
또다시 새로운 공해와 군비의 증강·물자부족·국제적인 실리주의, 그리고 지진과 화산의 발생을 전하는 뉴스가 쉴새없이 쏟아지는 오늘 또한 우리의 「종말론」에 대한 관심도 높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관심이 현대상황이 빚는 위기의식의 한 소산이든, 이변을 쫓는 욕구충족의 한 방편이든, 그것은 오히려 현실의 삶을 보다 충실하게 영위해야 된다는 의지를 고취하는 자극이어야 할 것이다.

<이근성기자>
「지구종말」에 대한 관심이 불안의식의 소산이든 욕구충족의 방편이든 우리가 거기에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사진은 박부주 작 무명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