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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냐 비둘기냐, 정체를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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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스탠리 피셔와 장병화. 공통점은 미국과 한국의 중앙은행 2인자라는 점이다. 피셔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이고 장병화는 한국은행 부총재다. 둘 다 중앙은행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와 금융통화위원회 멤버다.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키를 쥔 인물들이다.

 하지만 시장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벌어져 있다. 시장은 피셔의 한마디 한마디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Fed의 행보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다.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한 피셔가 Fed 부의장에 지명됐을 때 시장은 Fed 이사진에 통화 긴축을 중시하는 매파가 늘었다고 봤다. 지난 8월 피셔는 이런 예측을 뒤집고 정체를 드러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경제 콘퍼런스에서 그는 “대침체 여파로 미국 총생산 실적이 실망스럽다”며 “성장을 회복하는 게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기본 과제”라고 말했다. 경기부양책을 꾸준히 밀고 가는 재닛 옐런 Fed 의장과 뜻을 같이하는 비둘기파라는 메시지였다.

 이번엔 장병화 차례. 한국 시장에선 장 부총재의 행보는 관심사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장 부총재의 관점을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지난 6월 임명된 장 부총재는 여지껏 단 한 번도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힌 적이 없다. 그만이 아니다. 한은 금통위원 7명 중 이주열 총재를 제외한 나머지 6명은 경기를 보는 시각이나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들은 똑같이 한 표의 의결권을 갖는데도 자신을 감춘다. 법이나 제도로 금지하는 게 아니다. 그저 관행일 뿐이다. 시장에선 금통위원 중 누가 매파고 누가 비둘기파인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금통위원인지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미국 FOMC는 옐런 의장뿐 아니라 14명 위원이 연설이나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다. 올해 FOMC에서 의결권을 가진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연준 총재는 틈만 나면 “금리 인상 시기를 밝혀라”며 Fed의 미지근한 금리 정책에 쓴소리를 내놓는다. 반면에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준 총재는 항상 옐런 편을 드는 코멘트로 일관한다.

 중앙은행이 어떤 방식으로 시장과 소통하는 게 나은지 답은 없다. FOMC 위원들처럼 다양한 목소리를 내면 시장에 혼선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지러운 말 속에서 행간의 의미를 찾아 향후 정책방향을 예측하는 곳이 시장이다. 한국에선 오직 이주열 총재의 입만 쳐다본다. 다양성이 부족하다 보니 한은 총재의 말이 왔다갔다 하면 시장도 덩달아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다. 이런 시장에서 통화정책 방향을 가늠해본다는 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다. 더구나 골방에 갇힌 금통위는 정부의 압박에 취약할 여지가 크다. 금통위원들은 자신이 매인지 비둘기인지 정체를 밝혀야 한다. 이게 시장과 소통하고 통화정책의 투명성을 높이는 길이다.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