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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북한인권 규탄 결의 불참 어떻게 보나"

중앙일보

입력

찬성 : 북한 자극하지 않으려는 전략적 판단

고유환(동국대 교수·북한학)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며 출범한 노무현 정부가 주요 국정현안 결정과정에서 ‘명분보다는 국가이익(실리)을’, ‘모양새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전략적 사고’를 강조하고 있다. 제59차 유엔인권위원회에 상정된 대 북한 인권규탄 결의안 표결에 한국이 불참한 것도 발등에 떨어진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에서 내려진 결정으로 보인다.

유엔인권위, 북한결의안 표결 불참 배경

북한 인권규탄 결의안 표결에 한국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실상을 방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지금은 민족의 생존권이 걸린 북핵문제 해결이 북한 인권문제보다 우선한다는 관점에서 결의안 표결 불참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민족의 생존권과 북한 주민의 인권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민족의 생존권이 담보돼야 인권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민족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핵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서는 3자회담 등 다자틀 내에서의 북핵문제 해결 가능성이 높은 지금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북한 인권 결의안 표결에 불참한 것으로 보인다.

핵문제 해결과 경제난 해소가 선행돼야

우리는 이라크전쟁에서 확인했듯이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지 못하고 전쟁의 참화가 한반도에 불어닥치면 우리 민족 상당수가 최소한의 기본적인 인권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 북한 인권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한 ‘전략적 사고’는 먼저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북한의 개혁·개방 환경을 조성해서 경제난 해소와 민주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 인권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냉전시대 남북한은 한반도 현안문제를 둘러싸고 유엔에서 치열한 표대결을 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이 제삼세계 국가들을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경제·군사 지원을 하는 등 소모적인 경쟁을 해왔다. 유엔에서의 남북한간 표대결을 의식하여 아프리카 등 비동맹권 나라들에 대한 능력에 벗어난 과도한 지원이 북한 경제난의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표결과정에서 보듯이 북한에 대한 국제적 지원세력은 점차 축소되고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사항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이의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 인권 상황의 근본 원인은 굶주림

국제앰네스티(AI)가 밝힌 것처럼 북한 인권상황의 근인(根因)은 ‘굶주림’에 있다. 근년의 북한 내 많은 인권침해는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 타격을 주고 있는 기아와 극심한 식량난과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우선 탈북자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힘써야 한다. 그리고 굶주림에 신음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비료와 식량 등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북한 정권을 탓하면서 북한 주민들을 굶주림에 방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대북지원과 관련해서는 차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식량의 공평한 분배가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투명성 제고를 북한에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이다.

반대 : 북한인권과 노 정권의 이중 잣대

이동복(명지대 초빙교수)
노무현 정부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의 북한 인권 규탄결의안 표결에 ‘불참’을 결정함으로써 인권문제에 대한 노 정권의 입장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위선적이고 선별적이며 이중적인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노 정권이 제시한 표결 불참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15일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 출석한 윤영관(尹永寬) 외교통상부장관은 이인제(자민련)·박원홍(한나라당) 의원 등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이번 유엔 인권위원회 표결에 한국이 불참한 이유를 밝혔다. “인권은 지향해야 할 가치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북한을 개혁으로 이끌어 주민의 생활을 개선시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북한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권위주의 정부 때나 쓰던 해묵은 논리

놀라운 사실은 윤 장관의 이 같은 설명이야말로 과거 개발주도형 권위주의 정권들이 그 당시 국내에서의 인권탄압 시비를 잠재우는 데 사용했던 해묵은 논리를 ‘표절’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 당시 권위주의 정부들은 국내외에서 인권탄압 시비가 제기될 때마다 “경제개발이 먼저, 인권문제는 그 다음”이라는 입장을 고수했었다.

당시의 소위 ‘민주화’ 세력들은 권위주의 정부의 이 같은 입장에 강력하게 반발·저항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반체제 운동을 전개했고 오늘날의 노 정권은 그 같은 ‘민주화’ 세력의 ‘적자(嫡子)’임을 자임하고 있다. 그런데 그 같은 노 정권이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은 그것이고 이것은 이 것”이라는 상이한 이중적 잣대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 보편의 가치체계로서의 ‘민주주의’와 정치구호로서의 ‘민주화’ 사이의 괴리를 느끼게 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 기준으로 접근해야

이 같은 노 정권의 이중성은 최근 국회에서 “자료 부족”을 이유로 북한 인권문제에 관한 언급을 극력 자제한 ‘국가인권위원회’ 김창국 위원장의 태도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가 이끄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얼마 전 “이라크 인민들의 인권”에 대한 ‘걱정’을 이유로 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명의의 ‘의견서’를 발표했었다. 그러한 국가인권위원회가 우리의 동포인 북한 인민들이 김정일 독재체제 하에서 겪고 있는 참혹한 인도적 고통에 대해서는 정부의 유화적 대북정책에 지장을 초래할 것을 겁내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

이라크인 걱정하면서 北동포 외면해서야

이번 정부 결정의 허구성과 모순성은 이 나라의 바로 전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유 중의 하나로 인권신장에의 공헌이 거론되었고 또 현직 대통령도 인권변호사로서의 경력을 자랑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희화화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래 가지고 국제사회에서 한국 대통령에게 수여된 노벨 평화상에 대한 시비가 없으리라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이 같은 이중성 때문에 이미 한국은 북한인권에 관한 국제 인권단체들의 연대운동에서도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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