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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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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런던특파원

영화 ‘하일랜더’와 ‘브레이브하트’를 봤다면 스코틀랜드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원시적이고 거친 땅에서의 삶과 도전·사랑, 그리고 비극적 좌절. 여기에 ‘해리 포터’ 시리즈까지 봤다면 자신의 선호에 대한 자부심까지 들 수 있겠다.

 그러니 정작 그곳에 사는 스코틀랜드인은 어떻겠는가.

 실제 그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스코틀랜드가 지상 최고의 곳이구나란 느낌이 절로 들 게다. 우선 풍광에 대한 자부심은 우리네 삼천리 금수강산 저리 가라다. 또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부터 계몽철학자 데이비드 흄, 증기기관의 제임스 와트, 역사소설의 창시자인 월터 스콧 등을 쭉 꿰는 모습에 세계를 움직여 왔던 건 스코틀랜드인이었다는 생각이 잠시 스칠 수도 있다. 어느 스코틀랜드인은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다. “너희 나라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니?”

 운동도 잘한다고 할 터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영국이 금메달 순위 3위였는데 다섯 중 하나는 스코틀랜드인이 딴 거라고 말이다. 스코틀랜드인의 비중이 영국 전체의 8% 정도란 친절한 설명도 따라붙을 게다. 다만 축구 얘기를 할 땐 목소리가 작아질 수 있는데, 월드컵은 물론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본선에도 진출한 적이 없어서다. 그러나 곧 비장하게 이렇게 한탄하는 게 들릴 것이다. “유독 스코틀랜드는 운이 없다. 같은 조에 꼭 직전 월드컵의 우승팀이나 준우승팀과 만난다.” 하기야 올해도 독일에 졌다.

 그러곤 또 듣게 될 게다. 1300년대 전후한 스털링 다리 전투(브레이브하트 배경)와 베녹번 전투에서 ‘골리앗’ 잉글랜드를 꺾은 기쁨에 대해서 말이다. 또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이 어떻게 엘리자베스 1세에 의해 유폐됐고 죽임을 당했는지, 또 그의 후손을 연합왕국의 왕으로 내세우고자 반란을 일으킨 자코바이트들이 어떻게 비참하게 죽어갔는지도 말이다. 현대에도 마거릿 대처란 여인이 스코틀랜드를 탄압했다고 할 터이다.

 약소민족의 비애다. 마음이 더 간다.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잉글랜드의 기여는 망각하고 잉글랜드의 악행만 곱씹는 선별적 집단 기억력을 말이다. 그들의 사고에서 잉글랜드인은 악인일 뿐이다. 잉글랜드에 대한 미움이 정체성이다.

 이는 그러나 과도하게 한쪽 면만 부풀려진 신화다. 스코틀랜드의 현재 이미지는 월터 스콧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는데, 그 월터 스콧은 잉글랜드 독자의 전폭적 지지 덕분에 성공했다. 킬트로 알려진 스코틀랜드의 남자용 치마도 실은 잉글랜드인이 개량한 거다. 잉글랜드 버밍엄 출신 사업가가 없었다면 제임스 와트도 없었다. 하기야 엄청난 관광객을 스코틀랜드에 불러들이는 해리 포터의 원작자도 잉글랜드인 아닌가.

 스코틀랜드인들이 18일 독립 여부를 결정한다. 신화가 사실보다 더 힘이 세다고 다시금 느낀다. 우리는 어떤가.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