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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징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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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물가상승세는 예측대로 크게 둔화하고있다. 8월말까지 도매는 11·7%, 소비자물가는 13%가 올라 인플레이션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으나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하면 상승세가 수그려들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물가가 비교적 안정상태로 돌아서고 있는 것은 상반기의 석유가 및 서비스·공공요금인상과 하반기의 석탄가격인상 등의 충격이 어느 정도 흡수되어 새로운 가격체계를 형성해 가고있는 중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물가가 진정되고 있는 원인은 인플레이션의 양인이 다양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첫째 인플레이션이 완만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광범위하게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올 들어 과도한 임금상승의 억제, 79년부터 채택해온 금융긴축 등의 요인이 작용하여 인플레이션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널리 스며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위에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교육세 신설에도 불구하고 세제개혁을 통해 기업과 가계의 세 부담을 덜어준다는 희망적인 기대가 경제활동에 보이지 않는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약관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기도 하다. 경제에 대한 희망적인 예측이 경제여건을 호전시키고 물가에 대해서도 밝은 재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자나 소비자의 심리적인 안정이 물가안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공정거래법 시행이후 몇 개 품목의 가격자율화를 단행하여 가격인상을 한 것도 있었지만 소비자가 매점매석에 매달린다든가 하는 현상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불황을 가격인상으로 커버하려는 행위에 소비자가 호응하지 않을 만큼 소비자의 자신감이 일고있다는 것이다. 아파트가격의 고가화 등으로 일부 부동산투기가 재연할 기미가 있었음에도 전반적인 무드는 투기업자끼리의 투기에는 휘말리지 않겠다는 자세를 견지했다. 이는 시장의 가격기능에 적응하고 리드할 수 있는 경제풍토가 조성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물론 기초생필품 가의 안정에는 정부가 양곡의 조기도입을 서둘러 여유 있는 식량을 확보함으로써 적어도 기본생활에서 불안을 씻어준 것도 틀림없이 기여했다. 충분한 공급력이 있을 때 가격은 안정될 수가 있다는 사례인 것이다. 끝으로 해외 인플레이션의 위협이 현저하게 사라졌다는 것이다. 원유가와 해외원자재가의 안정으로 수입 물가지수는 지난 5월 이후 하락세를 지속하여 8월중에도 0·3%가 떨어졌다. 국내경제를 교란했던 해외요인이 수그러 들므로써 국내물가를 억제할 절호의 기회를 주고있는 셈이다. 금년의 물가는 곧 닥쳐올 추석과 연말이라는 고비를 두고 있으나 현재와 같은 기조가 이어진다면 그렇게 우려할 것은 없다. 특히 추곡작황이 호전되고 경기회복세가 꾸준하다는 것은 공급의 원활로 물가가 더욱 안정될 것을 예고한다. 문제는 물가가 안정화로 향하는 것을 계기로 당국의 경제정책과 기업·가계가 다함께 안정 기조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하느냐에 있다. 전두환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물가안정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고 강조해온 것은 물가안정이 모든 경제활동을 정상화시키는 기본요건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민간주도경제를 도입하고 경쟁 제한행위를 배제하려고 적극적인 시책을 펴면서 경제계에 대해서는 협력을 요청하는가 하면 세무조사 등을 통해 불공정거래행위 추방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부분적이긴 하지만 행정수단에만 의존하는 것은 단기적인 효과에 그치는 것이므로 재정·금융정책의 효율적인 집행이 근본적인 물가대책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세삭감으로 통화증발을 수반하지 않으면서 기업·가계의 부담을 덜어주어 생산·소비활동을 뒷받침하고 금리인하로 기업의 원가부담을 경감시켜주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이론상 금리인하는 유동성 과잉을 유발하나 철저한 통화관리가 병행되면 그것은 피할 수 있다. 저축의 실질금리보장을 주장하지만 일시적인 고통을 감내하여 물가안정을 이룩하면 그 다음 실질금리를 보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조세·금리 면에서 자국을 주어 기업의 투자와 생산의욕을 불어넣으면 생산성향상이나 기술·자본축적 여력도 생겨 재무구조도 개선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 수습에 결정적인 작용을 해나간다. 시장경쟁원리를 그대로 살려 나가려면 정부는 정책수단을 현명하게 적용해야하고 기업은 생산확대, 공정한 거래로 적정 이윤을 거두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또한 가계는 소비생활의 합리화와 시장에서 주어진 상품선택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여 부당한 상행위를 근절하는 책임을 다해야한다. 73년의 오일쇼크 때 벌어진 생필품매점이나 그후의 부동산 투기 등은 우리의 가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광난극이 아니었던가. 요컨대 국민경제의 모든 구성요소가 인플레이션을 수습한다는 공감대를 이루어 적정 이윤은 너그러이 인정하되 부당한 거래행위는 자제함으로써 시장기능 정상화에 좀더 애써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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