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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마쓰시타 정치인 양성소' 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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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마 야라네바 이쓰 데키루(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와시가 야라네바 다레가 데키루(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지난 17일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치가사키(茅ヶ崎)시에 위치한 마쓰시타(松下)정경숙(政經塾)의 세키 기요시(關淳)숙장은 현 일본 정치판을 바라보는 정경숙의 생각을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17일 치가사키시 시오미다이(汐見台)의 울창한 숲 속에 둘러싸인 마쓰시타 정경숙.

고대 그리스풍의 정문 아치를 지나자 바로 앞에는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이곳의 창립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1989년 작고)의 초상화가 보였다. 그리스에서 유래한 민주주의를 마쓰시타 정경숙이 앞장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뜻에서 이렇게 배치했다는 게 세키 숙장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 옆의 '신세이(新政)'잔디정원. 새로운 정치를 지향하라는 뜻으로 고노스케가 지은 이름이다. 이곳에서 후쿠하라 신타로(福原愼太郞.30) 등 졸업반 숙생들이 지난 13일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10개 지사선거에서 모두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다니 유권자들이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야""지금이 우리에겐 좋은 기회야. 아예 우리 정경숙 출신들끼리 뭉쳐서 정당을 만드는 건 어떨까""천만의 말씀. 또 다른 파벌 조성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거야. 그냥 각개약진을 하는 편이 낫지. "

지난 13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이곳 출신이 약진하면서 일본 정계에는 지금 '마쓰시타 정경숙'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23명 출마에 20명 당선'이라는 성적에서 나타나듯 유권자들은 '세습.구태정치 타파'를 내건 마쓰시타 정경숙의 목소리에 큰 호응을 보냈다.

정경숙 출신 후보들은 이번 선거에서 선거자금 지출내역 전면 공개, 지사 3기 이상 연임 금지 등의 공약을 내걸며 대부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리고 이것이 기존 정치권에 식상해 있던 유권자들에게 먹혀 들어갔다.

1979년 설립된 마쓰시타 정경숙이 배출한 졸업생 2백명 중에는 정치인이 많다. 중앙 정치권에서는 중의원 18명, 참의원 2명이 활동하고 있다. 시.도지사와 지방의원은 30여명에 달한다. 1기생 중에는 여당의 5선 의원과 야당의 간사장 같은 중진도 탄생했다.

전문가들은 정경숙 출신이 내년 중의원 선거에서 법안 발의에 필요한 20명 이상 당선할 경우 신당 창당 등 정치권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정경숙 출신 의원들은 소속당은 다르지만(자민 6명.민주 12명) '청년정치기구'란 단체를 만들어 매주 정책토론회를 열고 당파를 뛰어넘는 협력을 보이고 있다.

세키 숙장도 "설립 25주년인 내년 25명 이상의 중의원에 당선돼 정경숙 출신들끼리 낡은 정치판을 정리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며 신당에 대한 희망을 내비쳤다.

그러나 비판적 시각도 있다. 먼저 이들이 추구하는 효율주의가 기업이 아닌 정치에 제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 이들이 '새 정치'를 표방하지만 실제는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는 지적도 있다.

마쓰시타 그룹의 장학혜택을 받아 교육받은 이들이므로 마쓰시타 그룹을 제대로 비판할 수 없다는 등의 한계를 보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에 5기생 출신인 자민당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중의원 의원은 "마쓰시타 그룹에 편향된 행동을 한다면 그는 정경숙 출신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언했다.

가나가와현 치가사키=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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