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단재 신채호 선생 장남 신수범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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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제치하 36년에서 광복된 지 15일로 만36년. 일제식민지 아래에서 조국의 자주독립만을 위해 항거하다 순절한 애국선열은 헤아릴 수 없다. 광복 36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거룩한 애국정신을 되새기며 가족도 몰라 하고 항일투쟁에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의 후손들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 근황을 엮어 본다. 【편집자 주】
긍지에 산다.
『애국지사의 자손이라는 긍지보다 더하게 저한데 삶에 용기를 주는 것은 없습니다.』
항일민족주의자 단재 신채호 선생의 장남이자 유일한 혈육 신수범씨(61)는 애국지사의 자손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자세를 흐트려 본 적이 없다. 『독립운동을 한 까닭으로 만인으로부터 숭앙과 존경을 받는 선친을 욕되지 않게 처신에 조심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신씨는 광복36주년인 15일 선친의 정신을 기리며 앞으로도 자중을 신조로 여생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는 23년1월 유명한「조선혁명선언」(일명 의열단선언)볼 기초했고 광복운동 기에 걸쳐 배일민족주의자로 시종 해 온 독립운동의 지도적 언론인인 단재의 태를 잇고 있는 유일한 혈육.
충남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 도리미 마을의 가난한 유가(유가)에서 태어난 단재는 자손이 많지 않다.
슬하에 형제를 두었으나 2남 두범씨는 43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장남인 수범씨가 혈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8촌 안에 드는 친척이라곤 한사람도 없다.
신씨는 부인 이덕남 여사(38)와 장남 상원 군(11·송전국교 4년), 장녀 지원 양(12·송전국교 5년)과 함께 서울 강동구 잠실3동 주공아파트 3백51동204호에서 살고 있다.
방2개에 15평 짜 리지만 그나마 내 집이 아니고 월세 10만원(보증금 1백 만원)을 내는 조그마한 아파트에서 아쉬운 소리 안하고 지낸다.
뚜렷한 직업이 없는 신씨 가족에겐 매월 지급되는 원호연금이 유일한 고정적인 수입. 단재가 62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어머니 고 박자혜 여사가 건국공로 대통령표창(77년)을 추서 받음에 따라 매달 지급되는 10만원 안팎의 연금으로 집세를 낸다.
이밖에 단재 신채호 선생기념사업회가 펴낸『단재 신채호 전집』이란 책을 팔아 매달 얻어지는 20여 만원 가량의 수입으로 네 식구가 근근히 생활하고 있다.
그가 남의 아파트를 전세로 빌어 살고 있는 것은 조상에 대한 효도에서 비롯됐다.
선친에 대한「효도판제」는 사당건립이라고 생각, 75년에 살고 있던 아파트(15평)를 4백80만원에 처분하고 이를 사당(충북 청원군 양성면 귀내리 고두미 부락)부지매입에 몽땅 털어 넣었다.
사당이름은 단재영당. 신씨는 이제 남은 일이라곤 17일 선친의 영정만 모시면 사당 일이 모두 끝난다고 했다.
신씨는 75년에 신탁은행을 정년퇴직하고 살길이 막연해 다방·양장점 등을 차려 보았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이재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그래서 신씨는 요즘은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회장 이은상)에만 관여, 실질적으로 주관하고 있다.
이 사업회는 단재 탄신 1백주년인 작년에 간행된『단재 신채호와 민족사관』과『단재 신채호 전집』을 펴내 보급했다.
신씨는 북녘 땅에 흩어진 단재의 민족사관에 관한 자료를 못 구해 여간 아쉽지 않다고 했다.
소망이 있다면 단재 사상이 멀리 연구, 보급되고「단재 사상연구회」(가칭) 같은 것이 생겼으면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창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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