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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달도 구름 끼면 흐려진다|정두석<불교태고종 종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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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민 모두가 갈망하는 새 역사의 전개는 언제나 대화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믿는다.
대화는 화해와 번영의 활력소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의 역사와 문화도 인간과 인간사이의 대화 또는 인간과 자연사이에 이루어진 대화의 역사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 둘 사이에 이 대화가 잘 이루어졌을 때 인류는 평화를 누렸고 그 생활은 자유로 왔으며 문화는 또 찬란하게 꽃을 피웠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 사이에, 또는 인간과 자연사이에 대화가 단절되었거나 막혔을 때는 그 역사와 문화는 침체와 암흑의 시기를 피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원리는 국가나 사회나 단체나 개인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들과 대화를 잘 이끌어 간다면 그 나라는 발전과 번영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과의 대화를 마다하고 문호를 열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장래는 불을 보듯 환한 것이다.
단체, 개인에게 있어서도 외부와 원만한 대화를 지속함으로써 그 발전을 꾀한다. 만일 남과 또는 외부와의 대화를 끊고 돌아선다면 거기에는 소외와 경색의 벽이 둘러쳐져 자멸을 초래하기까지 한다.
대화는 나와 남과의 교통이다. 그것은 또 나와 사회와의 교통이며 나와 세계, 나와 우주와의 교통인 것이다.
원만한 인격은 원만한 대학의 교통에서 얻어지는 결과이기도하다.
불교의 목적인 해탈도 알고 보면 원만한 대화를 이룰 수 있는 경지와 그 차원을 의미한다고 본다. 해탈이란 누구에게도 또 어느 것을 향해서도 아무런 걸림이 없이 원만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교통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도 이와 같이 중생들로 하여금 원만하고 자유로운 교통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즉 일체와의 원만한 교통으로 해탈을 하도록 한 것이다. 태고 보우 국사의 『온 땅이 바로 해탈의 문(진대지시해탈문)』이라는 말도 결국은 같은 내용의 말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그 원만한 대화의 교통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부처님의 말씀에 의하면 첫째 사심이 없어야 한다.
사사로운 마음에는 방장 이기심이 앞선다. 그 이기심 때문에 탐욕이 생기고 신경질이 일어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 이기심이 있는 한 양보와 타협이 있는 대화가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다음으로는 상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상을 불교에서는 아 상이라는 말로 흔히 쓰는데 아 상은 자기가 제일이라는 착각 속에 사는 사람들이 갖는 망상의 관념이다. 아 상은 언제나 아 만과 아집을 따르도록 한다. 이 아 만과 아집이 그 자신을 남과 이웃으로부터 격리시키고 폐쇄시키는 두터운 벽이 된다.
인간은 이기심과 아 상만 없으면 한없이 순수한 존재이다. 그 순수한 인간성이 이기심과 아 상에 덮여서 어둡고 흐려져 있다. 마치 밝은 달이 구름에 가리워 져 제 본래의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과 같고, 맑은 물이 흔들려 흐려진 것과 같은 것이다. 밝고 맑아야 할인간의 심성이 그렇게 혼탁해져 있기 때문에 인간본래의 구질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인간의 이 같은 현상을 현대심리학자들은「인간성의 상실」또는「인간가치의 전도」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확실히 현대의 인간들은 그 방향과 중심을 잃고 있다.
자신의 분수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 분수를 자기가 지키지 못할 때 세상사람들로부터 받는 지탄과 조소를 면할 수가 없다.
수행 인이 가져야 할 본분과 분수는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주지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수행하는 사람이 수행하는데는 뜻이 없고 잿밥과 명예에 정신이 팔려 시정을 서성거린다면 그로 인하여 받는 세상의 지탄과 조소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불교인은 가끔 그렇게 분수없는 짓과 본분을 이탈한 행동을 보여 왔음을 숨길 수 없다.
우리의 1천6백년 불교 사를 펼쳐 보면, 불교수행자들이 부처님의 얼굴을 뜨겁게 만들고 법복의 권위를 스스로 추락시킨 흔적들이 많다. 여기에서 한국불교인의 새로운 각성이 필요하고 새로운 자세가 요청된다.
한국 불교 사에 드리워진 부끄럽고 어두운 그림자는 바로 불교인과 불교수행자들 마음에 드리워졌던 이기심과 아 상의 그림자였음을 알아야 한다.
현대불교가 표방하는 것은 보살정신의 구현과 대승불교의 실현이다.
보살은 나 보다 남을 앞세우는 양보와 헌신의 정신을 그 기본으로 삼는다. 또 대승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 나아가서는 생명 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해탈하려는, 즉 개공성불도의 사상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다 함께 해탈하려는 공동의식은 타협과 이해가 전제된다.
공동체의 생명은 원만한 타협과 상호의 이해에 의한 화합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진정한 보살정신의 구현과 대승불구 실현은 원만한 대화에 의해서만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제 이기심과 아 상을 깨끗하게 버리고 내일을 위한 새로운 대화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1906년 강원도 고성출생 ▲1919년 건봉 사에서 득도 ▲일본대학 종교학과 졸업 ▲보통고시위원 ▲동국대 총장 ▲태고종 중앙 종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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