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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1)빙산의 일각…드러난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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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여자 미혼모-.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의 고민으로만 보였던「처녀엄마」문제가 우리들에게도 눈앞에 다가왔다. 우먼 리브, 프리섹스 풍조는 공업단지 주변서부터 대학캠퍼스까지 열병처럼 번져 우리의 사회제도나 의식이 미처 따르지 못하는 사이 숱한 비극의 씨앗을 낳고 있다.

<미팅서 만난 상대>
서울 천연동 구세군 여자 관.
『내 품에 한번도 못 안아 볼 아기지만 뱃속에서 힘차게 노는걸 느낄 때마다 왈칵 엄마의 정 같은 게 쏟아져요. 지금이라도 그 남자만 나타난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아기를 낳아 기르고 싶어요.』
임신 7개월 째인 최 양(24·부산시 괴정동)이 구세군 여자 관을 찾은 것은 15일전이었다. 임신 4개월쯤 됐을 때 그녀는 낙태수술을 받으려고 몇 번이나 산부인과병원을 찾았으나 번번이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결국 최 양은 이곳을 찾아 친권 포기 서를 쓰고『아기를 낳아 주기』로 했다.
그녀는 4년전 계모가 보기 싫어 집을 뒤쳐 나왔다. 다방에서 종업원으로 2년을 보내는 사이 한 남자를 사귀게 되었고 임신을 했다. 임신사실을 알게 된 그 남자는 돈5만원을 쥐어 주며 낙태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영영 나타나지를 않았다. 『제가 아기를 낳는 순간 아기는 제가 볼 수 없는 곳으로 옮겨간답니다. 건강하게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지요. 항상 배고프지 않게 해 달라고 기원합니다.
퉁퉁 부어오른 그녀 얼굴엔 금방 눈물이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출산을 열흘 앞두고 산모 방에 누워 있는 임 양(20·경기도 인천시)은 통증이 올 때마다『엄마』를 부르며 몸을 뒤치고 있다.
대학1년 생. 미팅에서 만난 재수생과 단 한번의 실수로 엄마가 되게 되었다. 그녀가 임신사실을 안 것은 5개월 째였다.
병원에서는 낙태수술을 하기엔 늦었다는 것이다. 이들 철부지 남녀는 결국 구세군 여자관을 찾았다. 집에는 가정교사로 들어가 있겠다고 편지를 냈다.
『밤마다 엄마하고 동생얼굴이 떠올라요. 곱게 키운 자식이 이 꼴이 된걸 아시면 우리 엄마는 자살이라도 하실 거예요.』초점 잃은 그녀의 눈에서는 후회와 부끄러움의 눈물이 계속 흘렀다.
구세군 여자 관에는 호적상 처녀이면서도 엄마가 될 미혼모들이 32명이나 출산 일을 기다리고 있다. 오갈 데 없는 미혼모를 맡아 출산 때까지 돌봐 주는 곳은 전국에서 구세군 여자관과 서울 봉은동의「기쁨의 집」단 두 군데뿐.
이곳에서 만난 미혼모들은 하나같이 「한때의 실수」를 뼈 아파하면서 또 한편으론 곧 떨어져야 할 자기 뱃속의 생명체에 대한 애정의 갈등으로 얼룩져 있었다.
『미혼모라면 마치 특별한 종류의 여자들인 것처럼 제쳐놓는 사회의 선입관이 큰 문제입니다. 임신할 수 있는 여자라면 누구나 미혼모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깨달아야 돼요. 그들은 우리들의 누이·동생·딸들의 문제입니다.』 4년째 이들을 돌보고 있는 총무 송미혜씨(24)는 중절수술을 얼굴에 난 여드름 짜내듯 해 버리는 영악스러운 여자들에 비하면 이곳 보호기관을 찾는 미혼모들은 인간적 고뇌의 저쪽에 숨겨 놓은 행복을 가진 착한 여인들이라고 힘준다.
현재 미혼모들이 뱃속의 아기문제를 의논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기관은 홀트 아동복지 회 (서울 합정동), 한국사회봉사 회(서울 쌍문동), 대한사회복지 회(서울 삼성동), 동방아동복지회(서울 연희동)등 4개 입양알선기관.
지난 1년 동안 이들 4개 기관에서 상담한 미혼모는 4천여 명. 연간 20%씩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동방아동복지회 수석상담원 김영숙씨는 10대 미혼모의 수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게 큰 문제라고 한다.
그가 상담을 했던 7백20명 가운데 미혼모는 60%. 이 가운데 16∼20세가 17·l%, 15세 이하가 6%를 차지했다.
60년대 이후 두드러진 현상은 곳곳에 공단이 형성되면서 여공미혼모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씨 조사에 따르면 상담한 미혼모가운데 직업별로는 무직이 42%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공원으로 27·5%, 이밖에 회사원 4·4%, 학생2·1%이었으며 가정부가 1·6%이었다.

<가정환경이 큰 요인>
가정환경으로는 결손가정 모는 문제가정에서 미혼모가 단연 많이 발생하고 있다. 계모·계부를 둔 경우가 무려 56·8%이었고 홀어머니나 홀 아버지를 둔 가정이 12·4%이었다.
『집을 떠나 비슷한 또래의 남녀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공단주변이 아무래도 미혼모발생의 위험지대 같아요.』
금씨는 또 이들의 판단력이나 분별력을 가늠하는 교육수준은 지극히 낮아 국졸이 전체의 42·1%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중졸로 39·7%이었으며 대졸이상의 미혼모도 1·8%이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나타난 최연소 미혼모는13세, 최고령이 54세였다.
13세 미혼모 K양(B여중 1년)은 일요일 혼자서 집을 보다 놀러 온 오빠친구(15)와 이상한 장난 끝에 아이를 가졌다.
소녀는 물론 자신의 몸의 변화를 알지 못했다. 갑자기 학교에서 배가 아파 병원으로 갔고 그곳에서 제왕절개로 체중 1·9kg의 사내아이를 낳았다.
누구도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지만 분명 소녀는 엄마가 되었다. 이 사실은 담임선생님과 부모가 동방아동복지회를 찾아 아기의 입양을 의뢰함으로써 밝혀졌다.
입양알선기관에 비친 그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복지사회는 이들 무지한 성희군과 죄 없는 생명의 보호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문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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