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5)|제24화 한미 외교 요람기(52)|「정치 회담」 경비 회의|한표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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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953년8월28일 제7차 유엔 총회가 한국 통일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정치 회담 개최를 승인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대 따라 유엔사는 9월27일 중공과 북한측에 서한을 보내 정치회의에 관한 구체적인 준비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예비 회담을 열자고 제의했다. 유엔사 측은 이 예비 회담의 장소로 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제네바 중 택일 할 것을 아울러 제시했다.
한동안 아무 소식도 없던 공산 측이 답신을 보내면서 예비 회담 일시를 10월26일로, 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제의했다. 유엔 측은 이에 동의했다.
판문점 예비 회담에는 참전 16개국을 대표해 「덜레스」 미 국무장관 특별 보좌역이며 순회 대사였던 「아더·딘」과 미국무성 극동 국장 「케네드·영」 그리고 한국에서는 조정환 외무차관, 이수영 대령 등이 참석했다. 평양에서는 기복석이, 북경에서는 황화 (현재 중공 외상)가 대표로 나왔다.
공산 측은 회의 벽두부터 8월28일 통과된 유엔 결의안의 무효화를 기도했다. 다시 말해 이 결의안으로 확정한 정치 회담 참가 범위를 재론하자는 것이었다.
공산 측은 9월 제8차 유엔 총회에서 소련이 정치 회담 참가 범위를 재론하자고 떼를 썼던 것을, 되풀이하면서 버마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소련 등을 중립국으로 참가시켜야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공산 측이 참가 범위 문제를 회의 벽두에 꺼낸 저의는 이렇게 추측할 수 있었다.
첫째, 이미 지적했듯이 8월28일의 유엔 결의안을 무효화해보려는 것이다.
둘째, 아시아 몇개국을 포함시키자고 함으로써 아시아 지역 여러 나라의 호감을 얻으려는 것이다.
세째, 소련을 중립국의 하나로 참여시키자는 것은 전쟁 발발부터 배후 장본인이라는 누명을 해소해보려는 시도였다.
네째, 장기적인 지연 작전을 폄으로써 참전국간의 의견 차이를 조성, 미국 입장을 약화시기고 압력을 가할 요소를 기대하는 것이었다.
예비 회담은 공산 측의 이 같은 수작에 따라 회의 토의 사항을 합의하는데만 3주일이 걸렸다. 이때까지도 공산 측은 소위 아시아 중립국과 소련을 정치 회담에 참여시켜야한다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공산 측의 이러한 집요한 주장에 대해 「딘」 대사는 더 참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12월9일 회의에서 「딘」 대사는 『소련이 착하고 자비심 많은 나라라고 당신들이 아무리 말해도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소련의 발톱은 매우 날카롭다. 소련은 약소국들을 너무나 많이 먹어 삼켰다』고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소련은 결코 중립국이 아니라 분명히 침략성이 강하며 호전적인데 이런 나라를 어떻게 한반도 통일 문제를 토의할 정치 회담에 중립국으로 참가시키느냐는 주장이었다.
판문점 예비 회담에서는 아무 결론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미국 정부는 이 회담이 더 이상 계속된다해도 하등의 성과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딘」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더구나 12월13일 회의에서 공산 측은 한국의 반공 포로 석방은 미국이 배후에서 조종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딘」 대사를 대리해 회의에 임했던 「영」 국장은 공산 측의 이 같은 주장에 대로했다. 이날로 회의는 완전히 중지, 무기 휴회에 들어갔다. 그후 판문점 예비 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딘」 대사는 그후 예비 회담에 대해 얘기하면서 공산 측이 유엔군과 미군의 완전 철수, 공산 주도하의 한반도 통일, 한반도 남반의 연립 정부 수립, 자유중국의 유엔 축출 및 중공의 유엔 가입, 미국의 대 중공·북한 무역 제한 해제 등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판문점 예비 회담이 결렬 된데 대해 한국은 놀라지 않았다. 그러한 결과는 바로 한국이 앞으로 열릴 정치 회담에 임하는 북괴 중공 또는 소련 측의 성실성을 의심하고 있는 입장을 대변해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판문점 회담의 실패로 한국은 다시 정치 회담 자체가 열리지 않을 것이며 미국도 결국엔 마음이 변해서 전쟁 재개 방향으로 기울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기까지 했다.
한국의 이같은 「낙관」은 이승만 대통령의 신년 메시지에도 반영됐다. 이 메시지는 주미대사관을 통해 워싱턴 보도진에게도 배부됐다.
『만약 미국이 지금과 같은 강한 입장을 계속 견지한다면 우리는 하등의 결실도 없이 끝나고 말 정치 회담을 위해 서너달 동안 준비를 해야하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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