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은 한줄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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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37기 왕위전 본선리그 제2국
[제7보 (118~128)]
白·趙漢乘 6단 | 黑·柳才馨 6단

118로 살며 조한승6단은 비장한 모습이 된다. 흑은 엷다. 중앙으로 길게 뻗어 있는 흑 대마와 하변 일대의 흑들은 모두 급소 한방이면 비몽사몽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118의 후수로 살지 않을 수 없으니 이러고도 기회가 있을까.

유재형6단은 119로 왔는데 이 수가 매우 그럴싸하다. 하변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중앙 백△들을 위협하는 양수겸장의 수. 趙6단은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120으로 받아둔다.

칼날이 암중으로 번득이는 가운데 이 판의 승부는 거의 정점에 이르렀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흑의 운명이 결정되는 절체절명의 기로였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柳6단은 121로 성큼 걸음을 뗐는데 이 무심한 한발 앞에 바닥을 모르는 시커먼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흑의 명제는 간단하다. 하변은 살았으니까 '참고도' 흑1로 중앙을 연결하면 모두 해결된다. 흑3, 5로 실리를 차지하든, 중앙을 한 수 더 지키든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 실리가 짱짱한 흑이 쉽게 지는 일은 없었다.

柳6단도 이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121을 둔 것은 당연히 선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데 122의 붙임수가 121에 내재된 희미한 허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방심이랄까. 가볍게 한 수 던졌다가 상상 외의 역습에 직면한 柳6단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주변은 화약고라서 전투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123으로 일단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趙6단은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124로 젖혀온다. 121의 한점을 잡되 크게 잡자는 주문이다. 그건 흑이 지는 계가다. 柳6단은 이를 악물고 125 끊었고 趙6단은 126으로 되돌려치며 흑▲들을 노린다.

꽃길을 따라 웃으며 걷던 柳6단은 졸지에 진흙탕에 빠졌다. A면 백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백에 B로 절단될 때 위쪽 대마의 생사는 어찌 되는가. 그러나 A로 끊지 않을 수도 없다. 柳6단은 공든 탑이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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