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처럼 부자로" … 스코틀랜드 독립 지지 첫 과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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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독립에 찬성하는 시민과 반대하는 시민이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찬성이 반대를 앞질렀다. 18일 치러지는 주민투표에서 독립안이 가결될 경우 스코틀랜드는 1707년 잉글랜드 왕국에 병합된 이래 307년 만에 독립하게 된다. [에든버러 로이터=뉴스1]

스코틀랜드에선 ‘ABE’란 단어를 종종 만난다. “잉글랜드만 아니면 뭐든 좋다(Anything But England)”는 표현이다. 특히 운동경기에서 두드러진다. “스코틀랜드인의 요체는 잉글랜드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얘기될 정도다.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만난 20년 경력의 여행 가이드 덕 애트킨스도 그런 의미에서 전형적 스코틀랜드인이다. 관광 안내를 하며 “절대 정치 얘기를 해선 안 된다”면서 ‘예스 ’라고 새겨진 파란색 배지를 달았다.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지 여부를 묻는 18일 주민투표에 찬성한다는 의미였다. 그는 “잉글랜드에 착취당했다”며 노르웨이를 거론했다. 노르웨이는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가 넘는 부국이다.

 “노르웨이도 1960년 말 유전을 발견하기 전엔 가난했다. 이젠 세계적 부국이다. 우리도 북해유전이 있는데 못 산다(4만 달러 수준). 영국 정부가 그 돈을 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와 노르웨이는 인구도 비슷하다(500만 명 선).”

 독립하면 유전 덕에 노르웨이만큼 부유해질 것이란 기대였다. 그러곤 동행한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출신 여행객 10여 명에게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영국 이민자의 후손들이기도 한 여행객들은 이구동성으로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애트킨스는 “너희 나라는 다 독립하고 왜 우리만 그대로 있으라고 하느냐”고 벌컥 화를 냈다.

 사실 스코틀랜드인들은 “온전히 영연방의 일원이었던 적은 없다”고 주장한다. 스코틀랜드 역사를 ‘잉글랜드에 의한 핍박과 항거’로 인식한다. 1707년 잉글랜드와의 합병도 지배층이 주도한 것이지 대중이 동의한 게 아니라고 여긴다.

 최근 사례도 있는데 스코틀랜드인이 ‘그 여자(the woman)’로 부르는 보수당 출신의 마거릿 대처 총리에 의한 구조조정 작업이다. 폐광 등으로 스코틀랜드 노동자 5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잉글랜드 북부도 유사한 일을 겪었지만 스코틀랜드인은 자신들만 겪은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썼다. 보수당이 스코틀랜드에서 몰락한 계기였다.

 정서적 ‘ABE’를 넘어 독립 국가 움직임으로까지 구체화된 건 2007년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이 집권하면서다. 분리·독립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18일 주민투표까지 이르게 됐다. SNP는 줄곧 “독립해야 잉글랜드보다 잘살게 된다”고 주장했고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 점차 SNP의 주장에 솔깃하게 됐다.

6일 공개된 유고브 여론조사에선 처음으로 독립 찬성 여론이 51%를 차지, 반대 여론을 2%포인트 차로 앞섰다. 한 달 전 조사에선 반대 여론이 22%포인트 차로 우세했었다. 7일 공개된 TNS의 조사에서도 반대 여론은 39%로 찬성 여론(38%)과 대동소이했다.

  런던 금융가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파운드화의 가치가 최근 10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세를 보였다. 영국 파운드화의 달러환율은 1.61달러로까지 내려갔다. 스코틀랜드에 본부를 둔 스탠더드라이프와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주가도 약세를 보였다. 영국의 중앙 정가가 부랴부랴 나섰다. 보수당과 노동당·자유민주당이 함께 스코틀랜드의 자치권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노동당 정부를 이끌었던 고든 브라운 전 총리가 반대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노동당이 적극적인데 스코틀랜드에서 제2당인 데다 중앙정부 집권 가능성까지 걸린 일이어서다. 스코틀랜드에서 노동당은 하원의석 59석 중 40석을 차지한다(전체 하원의석 수 650석). 반면 보수당은 한 석에 그친다.

 영국 왕실도 긴장 상태다. 런던에 있는 언론들은 스코틀랜드에서도 존경받는 엘리자베스 2세가 직접 설득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문까지 한다. 왕실에선 “중립”이라지만 윌리엄 왕세손이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큰 뉴스가 있다”고 언급한 일이 있다.

스코틀랜드가 307년 만에 영국을 떠나 결국 독립할까. 반대 진영은 1995년 캐나다의 퀘벡주가 박빙의 차로 캐나다 잔류를 결정했던 일이 스코틀랜드에서도 재현되길 바란다.

알렉스 샐먼드 스코틀랜드 총리는 투표에서 ‘찬성’ 결과가 나오면 2016년 3월 24일 독립을 선포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 계획은 없다. 중앙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한 계획은 만들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찬성’ 결과가 나온다 해도, 독립국이 탄생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주민투표 후에야 경제·정치 분리를 위한 협상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든버러=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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