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수업, 뭐가 나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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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1백일 앞두고 고3생들에게 방학중인 학교에서 공부를 시키는 것이 『과외인가, 아닌가』를 놓고 최근 공·사립학교사이에 시비를 벌이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다.
대부분의 사립고교가 대학입시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고3생들의 방학을 단축한 것에 대해 공립고교측은 문교부 지시를 내세워 『일부사학이 정상화 돼가는 교육풍토를 흐려놓고 있다』 고 비난하는 모양이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공립고교측의 이런 시비는 가당치도 않다.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교사들이 무더위를 무릅쓰고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겠다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 일이지 어디 비난할 일인가. 이것은 논란의 여지도 없다.
문교부의 지시가 어떻고, 또는 여름방학이 심신단련과 정신순화의 기회여야 한다는 말은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자세를 놓고 시비를 하는 것은 상식 이하다. 그 자체가 비교육적일 뿐 아니라 국가의 장내를 생각해서도 한심한 작풍이다.
우리는 지난해의 「7·30 교육 개혁」으로 과외를 없앴다. 그것은 분명 무리가 있는 조치였지만 국민은 일단 수긍했다. 문제는 과외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이었다.
그러나「과외의 일소」가 교육의 핵률, 교육의 질적·양적 향상까지도 부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또 그런 지시나 조치는 누구도 내린 적이 없다. 오히려 학교 교육은 더욱 충실해야한다는 것이 사회의 한결같은 요청이었고 정부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지난 70년대 전 세계가 주목한 고도 성장을 이룩하고, 오늘과 같은 치열한 경제력 경쟁시대에 그래도 우리가 신생공업국가군(NICS)에 낄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그만큼 국민 모두가 후세에의 교육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이 아닌가.
흔히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을 마치 무슨 악덕이라도 되는 양 손가락질 하지만 우리 부모들의 교육열의가 그 정도로 극성을 이루었다면 오히려 좋은 면도 없지 않다. 물론 일부 학부모들의 극성이 계층간의 위화감조성 등 바람직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좀더 훌륭한 교육을 시키자는 뜻,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치맛바람」이란 긍정적으로 보면 아름답고 흐뭇한 바람이다. 오히려 모든 어머니들이 하나같이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이 기특하고 좋은 일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공립학교나 이른바 「명문」사립고교의 교사들이 한여름의 수업현행보다는 편하고 안일하게 지내겠다는 사고가 과연 교육자의 바람직한 자세인지 냉철히 생각해 보자.
현재 대부분의 사학들이 정부의 보조는 한푼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여건에 처해있는데 비해 공립학교의 여건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정규교육을 받은 우수교사를 더 많이 확보하고 풍족하지는 못하다 해도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곳이 공립학교들이다. 사학교사들의 신분보장이 문제가 되고 있는 터에 「공립」교사들은 그런 부담도 없다.
그래서 사학교사들이 단 한 명의 제자라도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려 기를 쓰는데 비해 어차피 신분이 확고한 공립교사들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교사가 단순한 「월급장이」라면 모른다. 교사들이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보든 그들은 단순한 「윌급장이」는 아니며, 또 그래서는 안된다. 이런 경우 양식있는 교육자가 취해야할 자세가 어떤 것인지 이 기회에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교육의 내실화는 바로 국가의 명운과 직결된다. 또 학생들의 열의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교사들의 가르치겠다는 열의가 이를 뒷받침할 때 비로소 교육의 내실화는 기약된다.
우리나라의 장내는 궁극적으로 교육에 달려있다는 것은 새삼 지적할 필요가 없다. 공부는 일생동안 해야한다는「평생교육」 의 개념이 차차 확산되고 있지만, 공부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총기가 한창 때인 고교생들이 공부를 하겠다는데 뒷받침은커녕 이를 훼방한다는 것은 어떤 구실로도 정상화될 수 없다.
우리 국민의 좋은 점 가운데 가장 좋은 점은 배우고 싶어하는 향학열이고, 배워야 산다는 그 의지다. 이것이야말로 국가부흥과 경제성장의 원천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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