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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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형경
소설가

가끔 만취하여 길가에 몸을 부려놓은 남자를 보면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저 사람은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들 발길 채이는 곳에 몸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스릴을 즐긴다는 명목으로 위험 속으로 뛰어들고, 관계 사이를 오가며 정서적으로 고갈되고, 세상을 욕하고 타인을 비난하면서 생을 낭비하는 것, 남자들의 그런 행동을 볼 때도 생각한다.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

유년기에 엄마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아기는 안정된 정서를 가진 건강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대체로 엄마의 유난스러운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란다. 그렇기에 의문이 깊어진다. 왜 어떤 남자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좋은 것들을 외부에 있는 여자에게서 받아야 한다고 믿을까. 자기중심적 선택, 근거 없는 자신감을 자기 사랑과 구별하지 못하는 걸까. 그들이 받은 엄마의 사랑에 나쁜 것이 섞여 있었던 걸까.

사실 아들이 태어나면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엄마 본인이다. 우선 기본적인 임무를 수행했다는 홀가분함이 있다. 집안의 대를 이어주고, 남편의 불멸 욕망을 충족시켰으니 이제는 기를 펴도 된다고 느낀다. 또한 아들의 엄마로서 생존 근거를 얻었으며, 노년까지 유효한 보험이 생겼다고 믿는다. 의식 차원에서 아들은 엄마의 존재 증명이 되는 셈이다. 무의식 차원에서 아들은 여성들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페니스 엔비(envy)’를 보상받는 기회가 된다. 여성은 아들을 낳으면 “나도 드디어 페니스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어떤 엄마는 “아들 고추가 미학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치 금강초롱꽃 같더라”고 표현했다. 아들 탄생을 기뻐하는 엄마 마음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존에 유익한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다. 그러니 평생을 두고 아들이 받은 엄마 사랑에는 아들이 불편해하고 부담스러워 할 만한 요소가 충분히 들어 있었을 것이다.

고부간의 갈등은 아들을 놓고 엄마와 아내가 벌이는 사랑의 경쟁 행위이다. 아들을 존재 증명처럼 여기는 엄마는 성인이 된 아들을 떠나 보내지 못한다. 며느리는 기필코 남편의 사랑을 독점하고자 한다. 내가 읽은 모든 세계 문학, 외국 영화, 해외 사례들을 떠올려봐도 우리의 고부 갈등 같은 스토리를 본 기억이 없다. 정신분석적으로 그것은 오이디푸스적인 금기 영역의 이야기다. 이번 명절에도 어떤 남자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두 여자 사이에서 눈치 살피며,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할 것이다.

김형경 소설가